이순신 장군과 관련 관광지역(역사 여행코스)

이순신 장군과 관련 관광지역(역사 여행코스)

초등학생들이 가장 존경하는 위인 가운데 이순신 장군은 손에 꼽힐 정도입니다. 너무나 존경해서 인지 이순신 장군이 활약했던 도시뿐만 아니라 거쳐 갔던 도시들도 이순신 장군의 업적을 기리는 관광 코스로 발전시켰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오히려 비슷비슷한 기념관들로 인해 업적과 관광지가 헷갈리는 경우가 있었습니다.

그래도 체험활동을 하면서 역사적 배경을 알고 여행을 하면 더욱 좋을 것 같아 이순신 장군의 간단한 연표와 관광지를 묶어 보았습니다. 여행에 작게나마 도움이 되면 좋을 것 같습니다.

이순신 장군 연표 및 체험 활동 여행 코스

무과에 합격하다

1545년 4월 28일, 지금의 서울 초동 부근에서 태어남.
1556년(12세) 충청도 아산으로 이사 감.
1572년(28세) 무과 시험을 보았으나 떨어짐.
1576년(32세) 무과 시험에 합격함. 권관이라는 하급 장교가 되어 함경도 동구비보로 감.

아산 : 아산에 위치한 현충사는  

이순신 장군이 과거 급제 전까지 외가인 아산에서 유년시절을 보낸 곳이며, 이순신 장군의 영정을 모신 현충사가 자리하고 있습니다. 1706년 숙종 임금 때 건립되었으며, 충무공 고택, 활터, 충무공 이순신 기념관등이 있습니다. 봄과 가을 나들이 여행으로 좋으며, 곡교천 은행나무길도 함께 거닐면 좋습니다. 현재 이순신 장군의 묘는 아산 금성산에서 1614년(광해 6)에 충청남도 아산군 음봉면 삼거리 어라산으로 옮겼습니다.

군인이 되어 벼슬길에 오르다

1580년(36세) 수군 만호가 되어 전라도 발포로 감.
1587년(43세) 두만강 어귀에 있는 녹둔도의 둔전관이 됨.
1589년(45세) 정읍 현감이 됨.

남해대교 옆에는 거북선 모형이 있으며, 거북선 내에는 여러 의상들과 무기들이 전시되어 있어 직접 옷을 입어 볼 수 있다.

거북선을 앞세워 일본군을 무찌르고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치다

1591년(47세) 전라 좌수사가 됨.
1592년(48세) 거북선을 만듦. 4월 임진왜란이 시작됨. 5월 7일 옥포 해전에서 승리를 거둠. 사천 해전과 한산도 해전에서 잇달아 승리를 거둠.
1593년(49세) 삼도 수군 통제사가 됨.
1597년(53세) 간신들의 모함을 받아 벼슬에서 쫓겨남. 원균이 이끄는 수군이 칠천량 해전에서 대패함. 8월 다시 삼도 수군 통제사가 됨. 명량 해전에서 큰 승리를 거둠.
1598년(54세) 11월 19일 노량 해전에서 전사함.

통영에 있는 삼도수군통제영
여수 : 이순신 장군의 활영상을 볼 수 있는 여수는  

1591년 전라좌수영의 본여이었던 여수에서 전라좌수사로 부임했습니다. 그래서 여수 곳곳에 장군의 전투의 흔적들이 남아 있습니다. 이순신 대교의 주탑 간 거리는 1,545m인데 그 이유가 이순신 장군의 탄신 행인 1545년을 기념한 숫자입니다. 이순신 광장은 여수 앞바다의 풍경을 감상할 수 있습니다. 동시에 전시되어 있는 거북선 내부를 관람할 수 있는 곳입니다. 진남관은 진해루의 터가 있습니다. 아쉽게도 정유재란 때 불타버렸습니다. 5월에는 이순신 관련 축제가 있으니 현창 학습으로 방문하면 좋을 것 같습니다.

거제 : 옥포 해전을 기념한 거제는  

임진왜란 발발 이후 첫 승전보를 올린 옥포대첩을 기념하여 거제도에는 옥포대첩기념공원이 마련되었습니다. 공원에는 기념탑, 전시관, 참배단, 옥포루, 효충사가 있으며, 매년 6월 옥포대전기념제전 행사가 열립니다. 해군사관학교 생도들이 이곳에서 선서를 하고 훈련을 받습니다.

완도 : 통제영이 있던 완도는  

정유재란 마지막 해인 1598년 수군 8,000여 명을 거느리고 해수로의 요새로 알려진 완도 고금도로 옮겼습니다. 고금도에서 전열을 재정비하고 노량진으로 출전했습니다. 이곳에는 월송대가 있는데 이순신 장군이 밤이 되면 올라가 생각이 잠겼던 곳으로 소나무 사이로 보이는 달이 여섯 시간가량 비춘다 하여 월송대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충무공의 유해를 남해 충렬사에서 고금도로 옮겼고, 아산으로 운구하기 전 월송대에 80여 일을 봉안했는데... 지금도 그 터에는 풀이 자라지 않는다고 합니다.

남해 : 이순진 장군의 유해를 안치했던 남해는

장군의 유해를 안치했던 남해는 이순신 장군이 마지막 해전을 벌인 곳은 노량해전에서 순국하고, 처음 유해를 남해 충렬사에 안치했습니다. 경내에는 비각, 내삼문, 외삼문, 관리사 청해루가 있으며, 사당 뒤의 정원에는 충무공의 임시로 시신을 봉안했던 자리가 있습니다.

통영 : 한산도 대첩을 볼 수 있는 통영은  

이순신 공원은 통영 정량동에 있는데 청동으로 만든 17.3m 높이의 이순신 장군이 한산도 앞바다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천자총통과 거북선 조각을 볼 수 있습니다. 또한 일출과 일몰을 아름다운 장관을 볼 수도 있습니다. 통제영은 충정, 전라, 경상도의 삼도 수군을 통괄하는 통제사가 있는 곳입니다. '통영'의 지명도 '삼도수군통제영'의 약칭에서 유래했습니다. 충렬사와는 다르게 한산도 제승당은 1593년~1597년 삼도수군 본영으로 무기를 만들고 군량을 비축했던 곳입니다. 장군이 통제사로 있을 때 손수 지은 유서 깊은 사적으로 한산대첩도, 우국충정도, 사천해전도, 노량해전도, 진중 생활도 등의 기록화가 있습니다.

통영에서 바라 본 바다
이순신의 난중일기

이순신 장군이 임진왜란 때 쓴 일기로 국보 제76호이다. 주로 나라일에 대한 자신의 의견과 싸움터에서 일어난 일 등이 적혀 있다. 일기를 통해서 이순신 장군의 엄격하고 자상한 모습들을 엿볼 수 있다.

이순신의 거북선

이순신 장군이 일본의 침략에 대비해 만든 전투함으로 머리는 용처럼 생겼으며, 몸통은 거북처럼 생긴 세계 최초의 철갑선이다. 거북 모양의 등에는 날카로운 송곳과 칼을 꽂아 적군이 배 위에 발을 딛지 못하게 했다. 그리고 배 둘레에 여러 개의 구멍을 내서 화살과 화포를 쏠 수 있게 했다. 임진왜란 때 사천 해전에서 처음 사용되었으며, 일본 수군을 무찌는 데 크게 이바지했다.

  • 거북선의 모형을 볼 수 있는 곳 : 독립기념관, 충청남도 아산 현충사

이순신의 한산도 대첩

임진왜란 때, 한산도 앞바다에서 이순신 장군이 거느린 조선 수군이 일본 수군을 크게 무찌른 해전으로 73척의 일본 함대를 학익진 전법으로 공격하여 47척을 부수거나 불태웠다. 12척을 포로로 잡는 등 큰 승리를 거두었다. 이 대첩은 김시민 장군의 진주성 대첩, 권율 장군의 행주 대첩과 더불어 임진왜란 3 대첩으로 손꼽힌다.

신라시대에 박명수가 태어났다면 왕이 될 상인가?

신라의 골품 제도(신분 제도)

 

삼국 시대에는 지배층과 피지배층이 확실하게 나뉜 사회였습니다. 크게 귀족, 평민, 천민으로 나눌 수 있습니다. 계급에 따라 거주하는 집도 입는 옷도 달라야 했습니다.

 

이런 신분 제도는 우리나라에만 있었던 것은 아닙니다. 프랑스의 대혁명이 발생했던 프랑스에도 신분에 따른 차별은 당연한 것처럼 받아들였습니다.

태양의 왕으로 불리던 루이 14세(태양의 왕)는 심지어 이런 칙령도 내렸습니다. 오직 귀족만이 빨간색 하이힐을 신을 수 있다고 말입니다. 초상화를 보시면 아시겠지만 지금과 다르게 남자들이 하이힐을 신고 다녔습니다. 

<루이 14세의 초상>, Hyacinthe Rigaud, 1659-1743, 파리  루브르 박물관

다시 신라로 돌아와서 왕족과 귀족들이 가장 높은 계급이고 그들이 나라의 전반적인 것을 운영했습니다. 당연히 지배 계층이니 다양한 특권과 물질적으로 풍요할 수 있었습니다. 좋은 집과 많은 시종을 거느리고 호화로운 생활을 할 수 있었습니다.

 

평민들은 대부분 농민들이었고, 세금을 내며 살았습니다. 또한 성곽이나 궁궐을 쌓을 때 노동력을 제공해야 했습니다. 그래도 천민에 비하면 조금이라도 숨을 쉴 수 있는 자유가 있었습니다.

 

천민의 대부분은 노비였고, 그들은 전쟁에서 포로로 잡혔거나 빚을 갚지 못해 노비로 전략했습니다. 그들은 사람으로 대접을 받지 못했습니다. 마치 물건처럼 사고 팔렸습니다. 만약 당시에 소와 노비가 물에 빠졌다면 당연히 소를 구했을 겁니다.

 

그런데 만일 박명수 씨가 신라시대에 태어났다면 어떤 신분이었을까요?

박명수 씨는 밀양 박씨로 알려졌는데요. 박혁거세를 시조로 하기에 진짜 성골의 후손입니다. 즉 왕이 될 수도 있는 신분이었습니다. 

 

왜냐하면 신라에는 골품 제도라는 특유의 신분 제도가 있었습니다.

 

신라 골품 제도 단계

 

신라의 골품 제도

골품이란 왕족을 뜻하는 '골'과 왕족이 아닌 사람을 뜻하는 '품'을 합쳐서 부르는 말입니다. 왕족은 성골과 진골로 나누고, 그 이외의 사람은 6두품에서 1두품까지 구분했습니다. 

 

이런 골품은 자손에게도 세습이 되었고, 두품에 따라 올라갈 수 있는 관직이 나뉘었습니다. 즉 아무리 뛰어난 능력을 가졌다고 하더라도 한계에 부딪치게 됩니다.

 

즉, 아무리 김유신이라도 만약 3두품의 가정에서 태어났다면 그가 할 수 있는 아무것도 없었을 겁니다. 우리가 잘 알고 있는 말을 목을 쳤던 김유신이지만 그의 출생 신분이 낮았다면 말은 고사하고 말을 끌어야 했던 노비였을 수 있습니다. 

 

요즘에는 신라와 같은 골품 제도는 없지만, 그와 같은 한계점들이 형성되어 사회적 문제로 대두되고 있습니다. 일상생활 속에서 사용하는 '금수저', '흙수저', '범털', '개털' 등등 부모님을 잘 만난 사람들은 태어나면서 사회 진출에 유리한 고지에 있고 아무리 노력해도 그 계층 사다리를 뛰어넘기가 어렵게 되어 스스로를 비하하는 용어들입니다.

 

직장 안에서도 이런 구분이 정해져 있는데 '정규직'과 '비정규직'의 갈등이 그것입니다. 미생이라는 드라마로 이런 갈등과 아픔을 잘 표현했지만 아직도 변화된 것은 별로 없습니다. 

 

아무튼 신라에서 자신의 신분에 따라 올라갈 수 있는 관직은 최고 단계가 정해져 있고, 심지어 사는 집의 크기와 장식, 옷과 수레까지도 차별이 생겼습니다. 과연 이런 사회가 온전한 국가를 이룰 수 있을까요?

 

그래서 국가들은 계층 간의 차이가 발생하지 않도록 여러 정책들을 만들고 노력하지만... 언제나 카르텔이 형성되기에 갈등은 여전히 존재합니다.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인간의 욕심과 야망은 끝이 없습니다.

고구려인의 풍습을 엿보다 - 무용총 벽화 이야기

고구려 무용총이란

 

중국 지린성(길림성) 지안현(집안현)에 있는 무덤입니다. 고구려 귀족의 무덤일 것이라고 짐작할 뿐 이 무덤이 언제 만들어졌고, 누구의 무덤인지는 아직 모릅니다. 아마도 영원히 무덤 주인은 비밀로 남겠죠?

 

 

무덤칸은 안길, 앞칸, 사잇길, 안칸으로 이루어졌으며, 그 방향은 서 남향이다. 안칸의 천정은 8각고임천장이고, 앞칸은 궁륭천장이다. 안길은 길이 1.4m 이고, 앞칸은 길이 약 1.0m, 너비 약 3.3m이며, 안칸은 길이 약 3.2m, 너비 3.2m이다.(출처 : 국립문화재연구소)

 

 

왜 무용총(춤무덤)이라고 부를까요? 그 이유는 무덤 안쪽 벽에 춤을 추는 사람들의 모습이 그려진 무용도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들을 지켜보는 인물(주인공)이 있답니다. 물론 무용도 이외에도 다양한 그림이 남아 있습니다. 우리들이 잘 알고 있는 수렵도도 무용총에 있는 벽화입니다.

 

무용총 벽화는 회벽 위에 그려져 있는데, 안쪽 벽에 실내생활, 앞쪽 벽에는 나무, 왼쪽 벽에는 사냥 장면, 오른쪽 벽에는 춤과 부엌을 그려 넣었습니다. 천장에는 해, 달, 별, 청룡, 백호, 비천, 신선, 기린과 구름무늬, 연꽃무늬 등을 그렸습니다. 앞칸 좌우 벽에는 나무,  건물, 기마인물 등을 그려져 있습니다.(참고 : 국립문화재연구소)

 

이런 그림들을 통해서 당시 고구려 사람들이 어떻게 살았는지 추측할 수 있는 좋은 자료가 됩니다.

 

무용총(춤무덤)의 벽화에서 본 떠 복원하였음(출처 : 국립문화재연구소)

 

무용총에 있는 벽화들

무용총 정면 벽에는 무덤 주인공이 손님을 맞이하는 모습을 담은 접객도가 있습니다. 

 

무용총 안쪽 앞쪽 벽 벽화 모습(출처 : 국립문화재연구소)

 

고구려 귀족과 스님으로 보이는 인물이 대화를 나누는 모습입니다. 당시 스님들은 치마를 입었다는 것과 귀족과 스님의 모습은 크게 그렸고, 시종은 작게 그린 것으로 보아 신분제 사회임을 알 수 있습니다.

 

무용총의 접객도(출처 : 국립문화재연구소)

 

벽화는 일반인들의 눈으로 보면 구분하기 엄청 어렵습니다. 대부분 복원해서 구분할 수 있도록 했기 때문에 일반인들도 감상할 수 있습니다.

요즘도 많은 해석과 이야기를 나오는 다빈치의 작품 [최후의 만찬]도 밀라노의 산타 마리아 델레 그라치 수도원에서 직접 가서 보게 되면 인터넷에 떠도는 이미지가 더욱 선명하고 훌륭하게 느껴질 겁니다.

 

 

출처 :  살아있는 한국사 교과서

 

아무튼 오른쪽 벽에는 무용수들이 긴 소매를 어깨 뒤로 늘어뜨리고 춤을 추는 무용도가 있습니다.

무용도에는 지휘하는 한 사람과 다섯 명의 무용수가 말을 타고 있는 주인 앞에서 춤을 추는 모습이 그려져 있습니다. 그 아래에는 일곱 명의 남녀가 합창을 하는 모습도 있습니다.

 

 

무용총 벽화(출처 : 국립문화재연구소)

 

무덤 안쪽 벽에는 두 채의 기와집과 음식상을 들고 나르는 여인들의 모습이 그려져 있습니다.

 

무용도 벽화 배치도(출처 : 국립문화재연구소)

 

 

 

출처 : 한국 미의 재발견 - 고분미술

 

 

왼쪽 벽에는 사냥하는 장면이 그려져 있는 수렵도가 있습니다. 수렵도에는 호랑이와 사슴들, 그리고 물결무늬처럼 표현된 산이 생생하고 세밀하게 그려져 있습니다.

 

무용총 수렵도(출처 : 국립문화재연구소)

 

수렵도 그림을 자세히 보시면 화살촉이 뾰족하지 않다는 것을, 그리고 선명한 등자가 보입니다. 또한 달리는 말에서 뒤를 돌아보고 활을 쏘는 모습을 통해 당시 고구려가 기병으로써 얼마나 훈련이 잘 되었는지 알 수 있는 장면입니다.

 

 

출처 : 국립문화재연구소

 

중국 역사서에는 "고구려 사람들이 활쏘기를 아주 잘했다."는 기록이 있는데 그것을 증명해 주는 그림입니다.

 

천장에는 사람 얼굴을 한 새와 거문고를 타는 선인 등이 그려져 있어 고구려의 세계관을 엿 볼 수 있습니다.

평창 올림픽에서 인면조가 등장하는데... 고구려의 덕흥리 고분벽화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말했습니다. 상상의 새 인면조는 무용총에서도 그려져 있습니다. 지금의 우리에게는 낯설지만 당시 고구려인들에게는 친숙한 이미지였나 봅니다. 바로 아래 왼쪽 사진 오른쪽 구석 중간 부분에 인면조가 그려져 있는데 아쉽게도 얼굴 부분이 지워져 있습니다.

 

무용총 천정 벽화(출처 : 국립문화재연구소)
무용총 별자리 배치도(출처 : 국립문화재연구소)

 

평창올림픽의 마스코트는 수호랑, 반다비인데 당시 기묘한 모습의 인면조가 더 화제가 되었습니다. 인면조 기사 하나 링크 걸어두면서 글을 마무리 합니다.  http://naver.me/xzcvjkP5

모파상이 싫어했던 에펠탑과 제2차 세계 대전 연도별 사건 정리

문화 유산 에펠탑과 제2차 세계 대전 이야기

새해에는 월간 계획을 준비하면서 이곳저곳에서 달력들을 다운로드하여서 사용할 텐데요. MS에서도 제공하는 무료 달력이 있다는 사실 아십니까? 쉽게 파워포인트만 접속해도 아름다운 일러스트의 달력을 사용할 수 있답니다. 다만 한복을 입고 있는 한국의 서울이 빠진 것이 아쉽네요. 아무튼 첫 번째 1월은 파리의 에펠탑으로 장식을 했습니다. 그래서 오늘은 에펠탑에 대한 짧은 이야기와 제2차 세계 대전을 중심으로 연도별 세계사와 한국사를 살펴보는 시간을 갖도록 하겠습니다.

 

세계 주요 도시 월별 달력 PPT(제공 : https://templates.office.com/)
파리.pptx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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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의 자부심 에펠탑

에펠탑은 지금처럼 모든 사람들에게 사랑을 받았던 건물이 아니었습니다. 에펠탑은 1889년 파리 만국박람회에서 프랑스혁명 100주년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건축물입니다. 다리를 설계하던 구스타브 에펠이 만들었습니다. 철 구조물의 철탑을 세우고 자신의 이름을 따라 에펠이라 이름 지었습니다.

 

2021년 1월 달력 : 파리 에펠탑(제공 : https://templates.office.com/)

뾰족하게 솟은 이 독특한 철탑은 사람들의 미움을 받았습니다. 그도 그럴 것이 유럽의 오랜 건축물과 어울리지 않는 흉찍한 구조물로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예술가 모파상은 에펠탑이 보기 싫어 보이지 않는 곳으로 이사를 할 정도였습니다. 

 

하지만 지금은 프랑스를 대표하는 아름다운 건축물이 되어 여행의 랜드마크입니다. 많은 여행객이 찾는 곳이면서 현재까지 텔레비전 송신탑으로 아주 잘 사용하고 있답니다.

 

제2차 세계 대전 중심으로 연도별(1937년 ~ 1948년) 한국사 Vs 세계사

1939년 ~ 1945년까지 세계 2차 대전이 벌어졌습니다. 독일이 폴란드를 침공하자, 영국과 프랑스가 선전포고하면서 시작되었습니다. 일본도 만주사변 이후 만주국을 수립하고 국제연맹을 탈퇴하고 독일과 이탈리아와 조약을 체결합니다. 당시 독일은 히틀러의 나치즘으로, 이탈리아는 무솔리니가 파시즘을 외치며 독재를 하던 시절이었습니다. 즉 전체주의의 영향으로 전 세계가 전쟁의 소용돌이가 빠져 들었고, 독일, 이탈리아, 일본과 VS 연합군(영국, 프랑스, 미국, 소련 등)의 싸움으로 전개되었습니다.

 

연도별(1937년 ~ 1941년) 한국사 VS 세계사
연도별(1942년 ~ 1948년) 한국사 VS 세계사

 

한국의 경우 1943년 11월 27일 이집트 카이로에서 연합국 지도자인 미국의 루스벨트, 영국의 처칠, 중국의 장제스가 모여 태평양 전쟁을 일으킨 일본에 대해 군사 행동을 하기로 뜻을 모으게 됩니다. 이때  “한국민이 노예 상태에 있는 것에 유념하여, 적절한 절차를 거쳐 한국에 자유와 독립을 줄 것을 결의한다.”는 특별 조항도 넣게 됩니다. 즉 한국의 독립 문제를 국제적으로 처음 논의된 것이 카이로 회담입니다.

 

1945년 5월 독일은 항복을 선언하지만, 일본은 전쟁을 멈추지 않고 계속 이어갑니다. 결국 1945년 7월 독일의 포츠담에서 연합국 정상들이 만나 패전국 독일과 일본을 어떻게 처리할 것인지 논의합니다. 먼저 일본에게 항복을 권하고 그다음 무장해제, 전쟁 범죄자 처벌, 군수 산업 금지하고 민주주의를 회복하기로 합니다. 또한 일본의 주권은 혼슈, 홋카이도, 규슈, 시코쿠의 네 섬과 연합국이 인정하는 작은 섬으로 한정합니다.

하지만 일본은 받아들이지 않았고, 막바지 전투에 몰입합니다. 결국 1945년 8월 6일과 9일 두 번에 걸쳐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 폭탄을 투하하고, 결국 일본은 8월 15일 무조건 항복을 선언합니다. 일본 애니메이션 [반딧불이의 묘]를 보면 원폭에 대한 전쟁의 아픔을 잘 묘사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일본은 태평양 일대에 저지른 만행을 먼저 사과하는 모습이 필요합니다. 진정한 사과 없이 원폭에 의한 피해자 코스프레만 한다면 그 누구도 일본을 이해하려고 하지 않을 것입니다.

 

제가 본 전쟁 영화들을 추천하면서 마무리하겠습니다.

2차 대전 전쟁 추천 영화

  • 덩케르크(2017년)
  • 라이언 일병 구하기(1998년)
  • 밴드 오브 브라더스(HBO 시리즈)
  • 에너미 앳 더 게이트(2001년)
  • 더 퍼시픽(HBO 시리즈)
  • 핵소 고지(2016년)

홀로코스트 관련 영화

홀로코스트란 “불에 의하여 희생된 제물 (번제)"이라는 그리스어에서 유래된 말로 "최종 해결(Final Solution)"이란 유대인 말살 정책에 의해 학살당한 유대인을 뜻합니다. 특별히 제2차 세계 대전 중 1942년부터 독일 나치들은 폴란드 남부 크라쿠프에서 서쪽으로 50km 지점에 있는 작은 공업 도시인 오시비엥침(Oświęcim)에 위치해 있는 아우슈비츠 수용소는 1997년 세계문화유산으로 유네스코에서 지정했습니다. 이곳은 역사상 가장 광기 어린 나치 집단의 반인류적인 행위를 벌인 곳으로 참혹한 인류의 기억이 그대로 보존되어 있습니다. 폴란드 여행 시 꼭 가보시길 권해 드립니다. 
  • 쉰들러 리스트(1993년)
  • 인생은 아름다워 (1997년)
  • 피아니스트(2002년)
  • 줄무늬 파자마를 입은 소년(2008년)

불국사 여행을 위한 기초 상식

불국사는 경주에 위치한 통일 신라 시대의 절로, 완전한 불교 세계를 건축물로 표현한 곳입니다. 대웅전과 극락전 등으로 구성되며, 34개 계단으로 부처의 세계로 이어지며, 연화교와 칠보교는 극락세계로 향하는 깨달은 사람들만이 오르내리던 다리로 여겨집니다.

경주 불국사 기초 상식

 

경주 불국사란?

불국사는 통일 신라 시대 지은 절로 경주 토함산에 있습니다. [삼국유사]에 전해지는 설화에 따르면 김대성이라는 인물이 현생의 부모를 위하여 불국사를 짓고, 전생의 부모를 위해서는 석굴암(석불사)를 지었다고 합니다. 불국사는 예전부터 있던 절을 김대성이 경덕왕 10년(751)에 다시 짓기 시작했는데 그가 완성하지 못하고 세상을 떠나자 혜공왕 10년(774)에 나라에서 나머지를 완성했습니다.

전체 2,000여 칸이나 되던 불국사는 임진왜란 때 대부분 불타고 말았고, 그 후 조선후기에 다시 지어졌다가 1969년부터 1973년 발굴 조사를 통해 대규모의 복원 사업이 이뤄졌습니다. 완전히 복원하지는 못했지만 대웅전 앞에 있는 석가탑과 다보탑, 그리고 불상은 당시의 모습을 잘 보여 주고 있으며, 1995년 석굴암과 함께 유네스코 세계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습니다.

 

불국사 전경
사진제공 : 문화재청

 

경주 불국사 계단의 의미

불국사는 '부처의 나라'라는 뜻처럼 신라 사람들이 생각하는 완전한 불교 세상을 건축물로 표현한 절입니다. 절의 중심인 대웅전, 그리고 극락전, 관음전, 비로전으로 구분되어 지는데, 대웅전과 극락전에 오르는 길 동쪽에는 청운교와 백운교(국보 제23호)가, 서쪽에는 연화교와 칠보교(국보 제22호)가 있습니다. 모두 34개의 계단으로 이루엊 있는데 부처의 세계로 가기 위해 지나야 하는 34개의 하늘을 뜻한다고 합니다. 이렇게 다리를 올라가면 자하문(자줏빛 안개가 서린 문)을 지나 석가여래가 모셔져 있는 대웅전으로 갈 수 있습니다. 

연화교와 칠보교는 속세의 사람들이 밟는 다리가 아니라 서방 극락세계의 깨달은 사람만이 오르내리던 다리라고 합니다. 이 다리는 극락전으로 향하는 안양문과 연결되어 있는데 안양은 마음이 편안하게 하고 몸을 쉬게 한다는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극락으로 가는 안양문 너머에 부처의 세상이 펼쳐져 있다고 생각해서 이렇게 만들었다고 합니다. 하지만 아쉽게도 현재는 문화재를 보호하기 계단을 이용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문들은 개방되어 있으니 문을 통과해 보며 신라인들의 염원을 느껴볼 수 있습니다.

참고로 부처는 석가모니 말고도 여러 부처가 존재합니다. 극락세계를 다스리는 아미타불, 진리를 상징하는 비로자나불, 병을 고쳐주는 약사여래불, 미래 세상에 나타나 어지러운 세상과 중생을 구하는 미륵불 등등 불국사에서도 여러 부처가 있으니 관찰해 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경주 여행은 아래 글을 통해 확인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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