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처럼 오랫 만에 가족 여행을 떠났습니다. 실내보다는 야외 활동 위주의 짧은 일정을 잡았습니다. 숙소는 저렴한 가격대를 형성하고 있는 라마다 호텔을 잡게 되었습니다.
2018년 평창 동계 올림픽 이후 우리의 기억에서 사라지고 있는 그곳에 위치하고 있는 호텔로 나름 깨끗한 시설을 유지하고 있었습니다.
평창 동계 올림픽 2018 성화
호텔 주차장에서 긴 동선을 따라 이동했습니다. 높게 솟은 건물이 아닌 옆으로 길게 펼쳐진 느낌이었습니다. 일부 객실들은 애완견도 동반 입장이 가능했습니다. 승강기 앞에는 정수기가 있었고 얼음 또한 가득 쌓여 있었습니다.
평창 라마다 호텔&스위트 내부 모습
호텔 방들은 복층 구조로 되어 있었는데 그것만으로도 아이들에게는 충분히 매력적이었습니다. 복층이다 보니 천정이 높아 답답한 느낌이 적었으며, 에어컨디션도 잘 작동하고 좋았습니다.
평창 라마다 호텔 숙박 후기
평창 라마다 호텔 에어컨 및 복층 모습
다만 아쉬운 점이 있다면 복층에 접었다 펼칠 수 있는 식탁 하나 정도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아이들이 가져간 보드 게임할 수 있는 좌식 식탁이 없어 캠핑시 사용하는 장비를 급하게 들고 올라와야 했습니다. 보드게임만이 아니라 간단한 과일 같은 것도 올려다 놓고 먹을 수 있게 말입니다.
바닥은 카펫으로 되어 있는데 사실 저는 그런 느낌을 싫어합니다. 비염도 있기 때문이기도 하고 사실 청소가 잘 될 일이 없기 때문이기도 합니다. 기본 제공되는 어메니티는 비누, 칫솔, 치약, 머리빗, 머리끈, 바디로션, 샴푸, 샤워용품, 티, 생수, 맥심 커피, 슬리퍼 등등... 아 샤워 가운도 제공되지만 지금까지 어느 호텔에서도 한 번도 입어 본 적은 없습니다.
밖으로는 바로 순수 양 떼 목장이 보이고 목장 아래 주차장도 보였습니다. 저녁에 호텔 주차장이 만차라면 바로 양 떼 목장 아래에 있는 주차장을 이용하시면 됩니다. 아주 가까운 거리에 산책 코스로 양 떼 목장을 다녀올 수 있어 아이들이 좋아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BBQ 자리도 잘 마련되어 있었으나, 냄새가 객실로 넘어 들어오니 침샘을 자극합니다.
평창 라마다 호텔 & 순수 양떼 목장평창 라마다 호텔 BBQ 테이블
호텔에서의 취사행위는 금지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객실마다 전자레인지가 구비되어 있음으로 간단한 조리식품은 먹을 수 있습니다. 아마도 객실에서 과도하게 고기를 먹게 되면 절대 냄새가 안 빠지기 때문입니다. 물론 장을 열어 보면 보시는 것처럼 마치 요리를 할 수 있을 것처럼 보이지만 연결이 안 되어 있고, 리조트에서 볼 수 있는 식기류가 하나도 없습니다. 물론 과일을 씻을 수 있도록 싱크대 물은 잘 나옵니다. 만일 배고프다면 식당과 치킨집을 이용하시면 될 것 같습니다. 감자탕부터 국물떡볶이... 치킨까지 다양한 음식점이 있었습니다.
평창 라마다 호텔 메뉴
라마다 호텔 부대시설
아이들과 함께 놀 수 있는 사계절 가족 썰매장이 있었습니다. 본인의 체력만 된다면 무제한으로 즐길 수 있습니다. 또한 4D 체험장과 오락실도 운영이 되고 있습니다. 물론 편의점도 마련되어 있습니다.
평창 라마다 호텔 사계절 가족 썰매장
평창 라마다 호텔 게임장 및 4D 체험장
4D 체험을 할 때 제공한 일회용 안면 마스크가 마음에 들었던지... 그대로 들고 와서는 침대에 누워 써보고는 좋아하네요.
순천을 여행하면서 가까운 보성 녹차밭을 여러번 다녀왔습니다. 새순이 올라오는 시기에는 더욱 싱그럽고 아름다운 풍경을 선사하는 곳입니다. 아이들과 함께 거닐기에 좋은 곳입니다. 하지만 유모차를 끌고 다녀야 한다면 버거운 코스입니다. 녹차밭으로는 대한다원이 유명한데... 안에는 음식점도 있어 간단하게 해결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좀 더 맛난 끼니를 해결하고자 한다면 이동해야겠죠~
녹차 분말가루를 사료에 혼합하여 돼지에 먹여 키운 보성녹돈은 육질이 연하고 콜레스테롤 함량이 일반고기보다 적어 고혈압과 동맥경화증을 억제하는 효과가 있다. 또한 육류 특유의 냄새가 나지 않고 맛이 좋은 고품질 기능성 식품으로 인기가 있다. 녹돈은 비게가 느끼하지 않고 꼬들꼬들하며 고기가 식어도 돼지고기 특유의 냄새가 나지 않는다. 보성녹돈은 지방은 30% 콜레스테롤은 10% 낮춰서 건강식이라 하겠다. 녹돈은 일반돼지에 비해 약 40일간을 더 먹인 후라야 1급 고기로 인정받는다.
지방함량이 적은 건강한 녹돈
2미 녹차떡갈비 : 떡갈비에 건강과 맛을 담다
녹차를 이용한 음식중 대표적인게 녹차 떡갈비다. 떡갈비는 남녀노소 누구나 좋아하는 음식으로 예전에는 쉽게 먹을 수 없는 귀한 음식이었다. 녹차의 고장 보성에서는 녹차 먹인 돼지와 녹차한우를 이용한 떡갈비를 특화시켜서 맛을 더욱 풍성하게하고 건강까지 더했다. 녹차잎은 고기의 잡내를 없애주고 맛을 좋게한다.녹차의 카테킨성분이 기름기를 잡아줘 느끼한 맛도없애주고지방의 흡수를 적게해주기 때문에 비만걱정도 덜어준다.
우리나라 대표 꼬막산지인 벌교 꼬막은 육질이 단단하고 쫄깃하면서도 짭쪼름속에 단맛이 난다. 예로부터 임금님수라상의 8품 중 1품으로 오랜 역사를 지니고 있다. 벌교 지역에서 생산되는 꼬막은 단백질과 필수아미노산, 타우린성분이 풍부해 간 해독은 물론 보양 음식으로 좋다. 참꼬막은 주름 골이 깊고 껍질이 단단하다. 꼬막은 꼬막정식, 꼬막전, 삶은 꼬막, 꼬막회 무침, 양념 꼬막, 꼬막국, 꼬막 탕수 등 다양한 요리가 있다.
다양한 꼬막 요리
4미 한정식/녹차정식 : 푸짐한 보성의 한정식에 건강담은 녹차요리
전남의 한정식은 들과 산에서 얻은 다양한 채소와 과일, 풍족한 해산물과 그것들로 만든 삭힌젓갈의 양념이 풍부하다. 특히 보성은 녹차의 고장으로서 대부분의 음식에 녹차를 이용하여 건강함과 맛을 향샹시켰다. 철따라 달라지는 반찬이 한상가득 차려진 밥상을 받는 기분을 직접 느껴보시기 바란다. 보성에서 먹는 정식에는 보성의 특산물인 녹돈, 꼬막, 해삼, 멍게, 키조개, 광어회, 낙지, 호박 등 싱싱한 재료를 사용하여 음식을 만든다. 물도 맹물보다는 녹차물을 주는곳이 많다.
보성 한정식
5미 전어회 : 바다의 깨소금, 고소하고 기름진 전어회
고전(古典)에는 씹을수록 고소한 맛때문에 귀한사람이나 천한사람이나 돈을 따지지 않고 사먹었다하여 전어(錢漁)라는이름이 붙었다는 속설도 있다. 그리고 전어의 고소한 맛을 비유했는데 “가을전어 머리엔 참깨가 서말, 전어굽는 냄새에 집나가던 며느리가 돌아온다”는 속담이 있을정도로 전어특유의 고소함이 예전부터 인정받아왔다고 하겠다.
9월 중순~11월 중순까지 회천에서 잡히는 전어는 그 맛이 담백하고 싱싱하여 회감으로 아주 좋다.전어는 서해와 남해에서 다 나지만 물살이 새고 수온이 낮은 남해가 더욱 육질이 단단하고 단맛이 난다. 싱싱한것은 회로먹고 구운 전어도 싱싱할수록 맛이 좋다. 전어회무침은 새콤달콤한 양념에 고소하고 기름진 전어살을 길죽하게 무채썰듯 성큼성큼 썰어넣고 야채를 곁들여서 무침해서 먹으면 술안주로도 좋고 밥에 비벼먹으면 그것대로 밥도둑이 따로 없다.
6미 바지락회 : 보성의 대표 바다 먹거리
향기로우면서도 갯내가 물씬 풍기는 바지락회는 여러사람이 비벼 먹을 수 있는 푸짐한 음식이다. 알이 꽉찬 바지락에 물을 조금만 붓고 끓여먹는 국맛은 일품이다. 바지락은 매화꽃이 피기 시작한 3월에서 6월까지 제철인데 율포 앞바다에서 캐온 바지락은 소금물에 담가서 뻘을 제거하고 살짝 데쳐서 회를 한다.
바지락을 좀더 매콤하고 강렬하게 먹을 수 있는 회무침은 달달한 매콤함이 매력적이다. 회무침에 밥을 비벼먹으면 금새 한공기 뚝딱 비울 수 있다. 바지락은 양질의 단백질을 함유한 식품으로 빈혈에 좋고 간장의 건강에도 도움이 된다. 또한 포함된 타우린은 혈액 속의 여분의 콜레스테롤을 배출시키기 때문에 동맥경화 예방에 도움이 되는 식품으로 알려져 있다. 바지락은 단백질과 아미노산, 글리코겐 등이 풍부하여 식욕을 돋군다.
중독되는 매콤한 맛
7미 짱뚱어탕 : 독특한 맛의 별미, 갯벌속 쇠고기
짱뚱어는 갯벌에서만 서식하는 바닷고기로 벌교의 넓은 갯벌에서 많이 잡혀, 다양한 요리들이 개발되었다. 펄펄 뛰는 짱뚱어를 통째로 삶아 뼈와 살을 분리해 시래기와 방앗잎, 깻잎, 그리고 좀피를 갈아 넣고 끓여 낸 독특한 맛을 내는 별미이다. 얼핏보면 추어탕과 구별이 안되고 들어가는 재료가 비슷해서 모르는 사람은 그냥 추어탕으로 착각 할 수 있다. 짱뚱어는 갯벌에 물이 빠지면 지느러미를 이용해서 뻘을 기어다니면서 먹이활동을 한다.전남지역에서는 짱뚱어를 이용한 구이나 탕으로 즐겨 먹고 단백질과 미네랄이 충부해서 갯벌의 소고기로도 불리며 고소한 맛과 쫄깃한 식감때문에 탕과 구이 외에도 회나 튀김으로도 먹는다.
보성양탕은 여름철 보양식의 대명사이다.냄새가 안나는 암염소만을 사용하여 말린 토란대, 머위대 등을 넣고 육개장처럼 얼큰하게 끓여낸 국물맛이 일품이다. 보양식으로만 인식되어온 염소요리가 조금은 멀게만 느껴지지만 염소가 우리 몸에 좋은 음식이다. 먼저 허한 몸의 기운을 보강시켜주고 소화에도 부담이 없습다. 그러니 당연히 수술후나 질병있는 노약자에게 매우 좋은 보양식이고 소고기보다 철분이 약2배정도 많아서 빈혈있는 분에게 좋고 아연성분때문에 남성에게 참 좋은 음식이다. 염소고기는 냄새가 난다는 편견은 버리자. 보성에서 먹는 염소요리는 냄새가 나지 않습고 남다른 비법을 통해 거부감은 전혀없는 탕과 수육을 즐겨보자.
보성의 바다는 깨끗하다. 깨끗한 바다를 만들어주는 건강한 갯벌. 그곳에서 잡은 싱싱한 낙지와 쭈꾸미는 건강뿐만 아니라 맛도 일품이다. 특히 회천면에서는 득량만에서 잡은 뻘낙지를 쓰기때문에 그 싱싱함이 식탁까지 그대로 전해진다.
자양강장에 좋은 낙지와 쭈꾸미
낙지와 쭈꾸미는 예로부터 자양강장의 효과가 커서 산낙지는 쓰러진 소도 벌떡 일으킨다고 할 만큼 스테미너에 좋은 음식으로 알려져 있다. 그뿐만 아니라 산낙지에는 타우린과 인, 철분, 마그네슘, 유황, 옥소, 코발트, 망간 등의 다양하고 풍부한 영양소가 골고루 들어있는 대표적인 원기회복 식품이다. 산낙지는 아미노산이 해독작용을 도와주어 숙취 해소에 좋으며, 간 기능을 개선하길 원한다면 산낙지를 많이 섭취하는 것이 좋다.
날씨가 참으로 좋았습니다. 가벼운 산책을 하기에 좋을 바람과 구름과 햇살이 가득했습니다. 아무런 고민도 없이 경주의 황룡사를 향해 출발했습니다. 깃털 보다 더 가벼운 봄 옷들을 입고 신나게 뛰어 다녔습니다.
황룡사에서 아이들과 함께
마음이 가벼워지니 길가에 민들레 홀씨도 눈에 잘 들어왔습니다. 이렇게 매년 찍는 민들레 홀씨 사진만 해도 어마 어마 합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면 또 잊어 버리고 열심히 셔터를 누르겠죠? 마치 바람에 날아가는 홀씨마냥... 기억 속에 어렴풋이 남아 흘러가는 건지도 모르겠습니다.
민들레 홀씨 이미지
경주의 황룡(黃龍)
사실 황룡사지 옛터는 황무지입니다. 왜냐하면 모두 사라져 버렸기 때문입니다. 황룡사는 진흥왕으로 부터 올라가 이야기가 시작됩니다.
진흥왕 14년(553)에 경주 월성의 동쪽에 궁궐을 짓다가, 그곳에서 누런 용(黃龍)이 나타났다는 말을 듣고 절로 고쳐 짓기 시작하여 17년 만에 완성하였습니다.
그 후 574년, 인도의 아소카왕이 석가삼존불상을 만들려다 뜻을 이루지 못하고 금과 철, 그리고 삼존불상의 모형을 배에 실어 보낸 것이 신라로 보내게 되는데, 그 재료(금 3만, 철 57,000근)로 삼존불상을 만들게 되었는데, 5m가 넘는 이 불상을 모시기 위해 진평왕 6년(584)에 금당을 짓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선덕여왕 12년(643)에 당나라에서 유학하고 돌아온 자장대사의 권유로 외적의 침입을 막기위한 바램으로 9층 목탑을 짓게 됩니다. 목탑은 백제의 장인 아비지에 맡났고, 2년의 노력 끝에 645년 완공하게 되었습니다.
황룡사는 백여 년에 걸쳐 만들어졌지만 고려 고종 25년(1238)에 몽고의 침입으로 모두 불타 없어졌으며 현재는 광활한 대지에 건물터와 주춧돌만 확인할 수 있습니다. 1976년부터 시작한 발굴조사에서 여러 유물들이 출토되었지만, 사라져버린 80m가 넘었던 황룡사 9층 목탑은 두고 두고 아쉽기만 합니다.
황룡사 9층 목탑을 1/10크기로 재현한 모형탑
황룡사 역사문화관은 황룡사 건립부터 소실까지의 과정을 담은 3D영상 시청각실과, 발굴조사과정에서 출토된 유물을 전시한 신라역사전시실 등이 있으며, 1층에는 황룡사 9층목탑을 1/10크기로 재현한 모형탑도 전시되어 있습니다.
관람료 : 어른 3000원, 청소년 2000원, 어린이 1000원 관람시간 : 09:00~18:00 (동절기 17:00까지) 주차정보 : 황룡사지황룡사역사문화관 주차장(구황동 707, 무료) 이용
황룡사 9층 목탑의 모형을 보면서 당시 많은 사람들이 그 위용에 저절로 고개를 숙였을 것을 생각해 보면서 한참을 바라보았습니다. 외적의 침입을 막기 위해 세워진 목탑인데... 결국 외적에 의해 소실되어 버린 삶의 아이러니를 곱씹어 보면서 말입니다.
문화관을 나와 다시 밖은 푸른 하늘로 가득했으며, 한적한 정원은 참으로 평온했습니다.
황룡사지 정원 이미지
역사관에서 부터 분황사까지 청보리밭이 펼쳐져 있습니다. 청보리밭 입구는 사실 분황사 쪽으로 가야 합니다. 하지만 분황사에 주차장에는 이미 많은 차량으로 만차였고, 청보리밭 안에도 많은 인파가 몰려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냥 안동의 청보리밭 추억을 이야기 하면서 지나치기로 했습니다. 다음에 기회가 되면 다시 오면 되니까요.
고려말에 지금은 서울 강서구 가양동이 된 옛적 양천 궁산, 공암나루 부근 마을에 의좋은 형제가 살고 있었는데, 어느날 형제는 나루에서(감암포라는 설도 있음) 금덩어리 두 개를 주웠습니다. 그래서 서로 사이좋게 한 개씩 나누어 가지고 나룻배를 타고 강을 건너는데, 강 한가운데쯤 왔을 때 동생이 무슨 생각에서인지 그 금덩어리를 주머니에서 슬그머니 꺼내 물속에 던져버렸습니다.
이것을 본 형이 깜짝 놀라서 그 까닭을 물었습니다.
"형님, 오늘까지 우리 형제간의 의리가 남들이 부러워할 만큼 된 것도 우리가 다 같이 가난하기 때문에 부지런히 일한 것이고 그 외에는 아무것도 바랄것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 큰 황금덩어리로 부자가 되지 않겠습니까? 그러면 자연히 일도 안 하고 그로 말미암아 더 큰 욕심이 생기고 또 나쁜 마음이 생길 것입니다. 그것으로 말미암아 우리 형제간의 의리는 갈라지고 서로 믿던 형제가 남남이 안 된다고 어떻게 말하겠습니까? 그런 생각을 하니 저는 갑자기 황금덩어리가 싫어지고 무서워져서 물에 던졌습니다."
형은 이 말을 듣고
"참 네 말이 옳다.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이 금덩어리가 무섭다."하고 곧 금덩어리를 던진 곳을 투금포라 했는데 이로 말미암아 김포라 칭하게 되었다고 전해지고 있습니다.
여우재 고개의 전설
임진왜란 때 의병의 선봉장으로 왜군과 싸우다 7백 의사와 함께 장렬히 돌아가신 중봉선생은 지금의 김포시 감정동에서 출생한 분이십니다. 중봉이 서당에 가려면 도중에 여우재고개라는 고개를 넘어서 다녀야 하는데, 하루는 이 고개를 넘어가는데 예쁜 처녀가 나타나 중봉을 껴안고 입을 맞췄습니다. 이후로도 날마다 그 처녀가 나타나서 중봉을 껴안고 입을 맞추곤 했어요.
하루는 서당 선생이 중봉을 보고 "너는 어째서 얼굴에 화색이 없고 병색이 되어 가느냐? 너 요새 무슨 일이 생긴 게 아니냐?" 하고 물으셨어요. 이에 중봉이 "네! 있었습니다. 서당에 오느라고 고개를 넘노라면 예쁜 처녀가 나타나서 강제로 입을 맞추곤 했습니다. 벌써 여러 날 그랬습니다."라고 털어 놓았습니다.
이에 서당 선생은 "그 처녀하고 입을 맞출 때, 그 처녀가 무슨 구슬 같은 것을 네 입에 넣어다가 다시 제 입으로 가져가지 않더냐?" 라고 물었어요. 중봉이 "그렇습니다."라고 하니까 선생은 "그 처녀는 인간이 아니고 여우가 둔갑한 처녀인데 그 여우가 네 기운을 빼앗아 가니라고 그러는 것이다. 그러니 다음에 입을 맞추고 구슬을 네 입에 넣거든 입을 꽉 다물고 돌려주지 말고 거기서 쏜살같이 뛰어 오너라" 하고 일러주었지요.
중봉은 서당 선생이 이른 대로 그 처녀가 입을 맞추고 넣어준 구슬을 입에 문 채 처녀를 떠밀고는 달려오려고 했어요. 그랬더니 처녀는 중봉을 붙잡고 구슬을 도로 빼앗으려고 달려들었지요. 중봉이 뺏기지 않으려고 둘이 한참 옥신각신하다 중봉이 그 구슬을 삼켜버렸어요. 그랬더니 처녀는 슬피 울며 숲 속으로 사라져 버렸지요.
그러고 나서 중봉이 서당에 갔더니 서당 선생이 그 구슬을 가져왔거든 내어 놓으라고 했어요. 중봉이 "여우에게 그 구슬을 빼앗기지 않으려고 옥신각신하다가 삼켜버렸습니다."하고 말하니 선생은 "어허, 아까운 보배가 없어졌구나, 너는 그 구슬을 삼켰으니 땅의 이치는 환히 알지만 하늘의 뜻은 모르게 될 것이다."라고 말했어요.
그리고는 "그 처녀는 원래 여우인데 사람의 기운을 빼앗아 먹고 사람이 되려고 너한테 달려들어서 네 기운을 빼앗아 먹던 중이었다. 그것이 안 되어 여우로 돌아간 것이다."라고 말했어요.
그 중봉이 자라 어른이 되었을 때, 통진 앞바다에 난데없이 대팻밥이 떠밀려 왔어요. 이를 보고 사람들이 중봉 선생께 무슨 징조인가 물었어요. 중봉 선생은 "그것은 왜놈들이 우리 조선을 침략하려고 많은 배를 만드느라 대패질한 그 대팻밥이 흘러 온 것이다"라고 말했어요.
중봉 선생이 어릴 적 그 여우구슬을 삼켰기 때문에 지상에서 일어나는 일은 모두 환히 알 수 있었던 것이지요. 그 후 몇 년 안 가서 아니나 다를까 왜구가 조선땅을 쳐들어 와서 온 나라가 잿더미가 되고 말았습니다.
애기봉의 전설
병자호란 때의 일이에요. 기생 애기는 평양감사와 사랑하는 사이였어요. 그런데 어느 날 두 사람의 운명을 모질고 슬프게 만든 전쟁이 일어났어요. 북쪽 오랑캐(후의 청나라)의 침략으로 감사와 애기는 임금님이 계신 한양으로 피난길에 오를 수 밖에 없었지요. 당시는 교통수단이 발달하지 못해서 걸어서 수 천 리 길을 가야만 했어요. 연약한 여자의 몸으로 수 천 리를 걸어가야 하는 일이 힘겨운 노릇이었지만 감사를 따르는 애기는 참고 견디며 개풍군까지 왔어요.
그러나 감사는 오랑캐에 잡혀 끌려가고 말았어요. 감사와 생이별을 한 애기는 혼자 강을 건너 월곶면 조강리에 머물면서 감사가 돌아오길 기다렸어요.
애기는 하루하루 더해지는 감사에 대한 그리움으로 날마다 쑥갓머리산(하성면 가금리 소재) 정상에 올라 감사가 계신 북녘을 향해 눈물로 소리치며 애타게 기다리다 병이 들어 죽음을 눈앞에 두게 되었지요. 애기는 임을 행한 그리움으로 매일 애타게 기다리던 산 정상에 묻어 달라는 유언을 했어요.
애기가 죽자 동네 사람들은 애기 유언에 따라 애기를 쑥갓머리산 꼭대기에 장사하고 그 산을 애기봉이라 불렀답니다. 옛날이나 지금이나 애기봉은 북녘에 대한 애절한 그리움이 한으로 맺힌 곳이랍니다.
경기도 김포시 관광지도
손돌공의 전설
고려시대 몽골의 침입이 있던 때에요. 한 임금이 피난하려고 강화로 들어가기 위해 손돌이라고 하는 뱃사공의 배를 타게 되었어요. 손돌은 물길을 잘 아는 뱃사공이라 조금 돌아가더라도 안전한 물길을 따라서 가고 있었는데, 강(염하강)의 파도가 세서 배가 심하게 흔들리기 시작했어요.
이에 임금은 자기를 죽이려고 일부러 이렇게 고약한 곳으로 배를 저어가는 것이 아닌가 손돌을 의심하기 시작했어요. 결국 임금은 불안한 마음에 신하를 시켜 손돌의 목을 베도록 명령했죠.
이때 손돌은 "저는 죽어도 여한이 없지만 임금께선 여기 제가 바다에 던진 바가지를 따라 배를 저어가면 무사히 염하를 건널 수 있을 것입니다."라고 유언을 남기고 죽임을 당하고 말았어요.
이후 왕이 탄 배는 뱃사공 손돌의 바가지가 안내하는 대로 따라가 무사히 그곳을 빠져나와 목적지에 당도하였답니다. 왕은 그제서야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손돌의 주검을 거두어 성대히 장사를 지내주었어요.
그 뒤 그가 죽은 날(음력 10월 20일)이 되면 엄청나게 세찬 사람이 불어 손돌의 원혼이 그렇게 바람을 일으키는 것이라고 여겨 그를 위해 제사를 지내고 있답니다.
그리고 이때의 거센 바람을 '손돌이 바람', 이 무렵 추위를 '손돌이 추위'라 전해 오고 있어요.
천등고개의 전설
서울에서 48번 국도를 따라 고촌읍 신곡리를 지나 김포 시내로 오려면 반드시 넘어야 하는 고개가 있는데, 여기가 '천등고개'에요.
그런데, 이 고개 주변의 산은 그리 험하거나 높지는 않지만 아름드리 수목들로 꽉 찼었고 그 산속에는 산적들이 우글거렸기 때문에 주민은 대낮에도 마음 놓고 고개를 넘을 수가 없었지요. 그리하여 신곡리 쪽이나 천등마을 쪽 사람들이 상대편 마을을 방문하려면 천 명이 모여야 산적들의 피해 없이 안심하고 고개를 넘을 수 있었다고 해요.
천등고개는 '천명이 모여서 오르는 고개'로 원래 '천등(千登)고개'였을 것이나 어느 사이에 변하여 현재 한자로 천등(天登)으로 쓰고 있어요. 이 고개는 조선조 말에 강화도령이 임금(철종)에 오르려고 상경하던 길에 행차가 늦는다고 호령하는 소리가 천둥소리 같았다 하여 '천둥고개'라 했다고도 전해지고 있어요.
4월 초에는 역시나 벚꽃을 따라 나들이 여행이 정말 좋습니다. 봄날의 따스한 기운을 받으면서 새하얀 벚꽃 길을 걸어 다니는 것 만큼 좋은 일이 또 있을까요?
하지만 올 해도 코로나가 발목을 잡았습니다. 벚꽃의 관광 명소 마다 축제를 취소하고 방문객을 통제하는 상황입니다. 참으로 어려운 시기입니다. 지난 1년 동안 거리두기를 진행했지만 여전히 거리두기를 유지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도 이제는 마스크의 원활한 공급과 사람들의 의식이 깨어 있어 철저하게 개인 방역을 준수하는 상황이라 작년의 혼란은 없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빠른 백신의 공급으로 전 세계가 안정을 찾아 가길 기원해 봅니다.
안동 월영교 모습
4월 11일에 방문한 안동 월영교의 모습입니다. 많은 사람들의 몰리지 않아 여유롭게 봄날의 기운을 만끽할 수 있었습니다. 다리 넘어로 보이는 벚꽃을 빨리 마주하고 싶은 마음에 저절로 콧노래가 나옵니다.
안동 월영교의 벚꽃 터널 모습
한적하게 물을 가로질러 달리는 황포돛배는 복잡했던 마음에 여유를 주기에 충분했습니다. 가족 단위로 탈 수 있는 달모양의 문보트도 운영이 되고 있었습니다. 황포돛배는 평상시 보다 적은 인원제한을 하면서 운영을 하고 있었었습니다.
안동 월영교 황포돛배 모습
문보트는 3인만 탑승할 수 있습니다. 놀이 공원에서 타던 오리배는 내릴 때 다리가 후덜덜 해지는 경험을 했지만, 문보트는 조이스틱으로 운전을 하면됩니다. 블루투스 마이크를 대여하시면 강 위에서 신나게 노래방을 즐길 수 있으며, 천원에 비눗방물도 구매하시면 30분이 금방 지나 갑니다. 다만 탑승료가 좀 비싼 것 같습니다. 체험을 마치고 내릴 때 안내하시는 분이 저녁에 오면 더욱 멋지다고 다음에 또 오라고 하시네요.
안동 월영교의 달조각 모습의 문보트
월영교 안쪽으로 체험활동을 할 수 있었습니다. 곧 다가 올 여름을 생각하면 역시나 부채만들기가 최고인 것 같습니다. 만들어진 부채에 먹물로 그림이나 글씨를 적으면 되는데... 간단하면서도 만들고 보면 나름 멋있어 보이고 가장 실용적입니다. 마침 와당 만들기도 진행하고 있었는데... 나중에 이름이 새겨진 와당을 찾으러 다시 안동을 방문해야 합니다. 자기 이름을 찾을 것을 생각하며 아이들은 벌써 설레여합니다.
안동 월영교에서 진행한 체험활동
고즈넉한 남반고택에서 선성현객사와 안동석빙고를 한 바퀴 돌아 보는 것도 너무 좋았습니다. 봄 날의 향긋한 냄새와 지저귀는 새들의 속삭임과 밟고 지나가는 흙들의 감촉을 느끼면서 말입니다.
안동 선성현객사의 고즈넉한 모습
오랫만에 답답한 일상에서 벗어나 즐거운 추억을 남기고 돌아왔습니다. 안동의 가볼만한 여행지로 월영교 일대를 추천합니다. 이번 여행은 벚꽃을 보기 위한 나들이 였는데, 나중에 기회가 되면 야경을 즐기기 위해 다시 방문하고 싶은 곳이었습니다.
안동 월영교 일대의 숲속 도서관에서의 즐거운 추억
돌아오는 길에 안동의 가볼만한 유명한 제과점에도 들렸습니다. 생각과는 다르게맘모스 제과점은 그리 크지도 않았고, 여러 종류의 빵이 있는 것도 아니었습니다. 대전의 성심당과 전주의 풍년제과와는 확연히 다른 규모였습니다.
안동 맘모스제과 파운드 케이크
집에서 열어본 맘모스 제과의 파운드 케이크입니다. 안이 정말 풍부하게 채워져 있었습니다. 유자 파운드를 먹어봐야 한다고 하는데 저희가 도착했을 때는 이미 품절이었습니다. 아쉬운데로 다른 파운드 케이크를 골랐습니다. 집에서 열어 보니 포장지도 고급스러워 선물용으로 좋을 테지만... 저희가 꿀꺽~
코로나로 인해 야외활동을 못하게 되면서 베란다에 더욱 집중하며 시간을 보내고 있습니다. 역시나 베란다에는 히야신스가 가장 먼저 봄을 알려 옵니다. 히야신스는 구근식물로 겨울에 얼지 않도록 관리만 해준다면 날씨가 풀리면 가장 먼저 싹이 올라오고 꽃을 피웁니다. 향기 또한 너무나 은은해서 봄을 알려는 전령사입니다. 저의 베란다에도 2월에 이미 꽃을 피우고 향기를 품어내고 있답니다.
히야신스 꽃 이미지
로즈마리 꽃망울
그렇게 살펴보던 중에 로즈마리에서 꽃망울을 발견했습니다. 로즈마리 꽃이 반가운 이유는 그렇게 오랫동안 키웠지만 한 번도 꽃을 본 적이 없었기 때문입니다. 로즈마리의 꽃 피우는 방법이 따로 있을까요? 다른 화분에도 여러 로즈마리가 있지만 아무도 꽃을 피우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이 녀석만 꽃망울이 맺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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로즈마리 꽃망울
그냥 나의 추측은 어느 정도 환경에 적응이 되고, 꽃을 피우기에 충분하다고 판단되면 스스로 꽃을 내는 것 같습니다. 꽃망울을 내주니 기특하기만 합니다. 고기 굽기용으로 사용하는 '바다의 이슬' 로즈마리의 귀여운 모습을 보면서 다시 한번 로즈마리에 관심을 가져 봅니다.
봄의 전령사 히야신스 꽃 모습
역시나 로즈마리 보다 키우기도 쉽고 실패 없이 꽃을 볼 수 있는 히야신스는 아이들과 함께 키우기 좋은 식물이 분명합니다. 겨울철 구근 관리가 어렵다고 판단되시면 양파망에 넣어 두셔도 죽지 않고 싹을 키울 수 있다는 것을 가장 기본적인 상식이랍니다.
코로나 이후 정말 다양한 업체를 통해서 마스크가 쏟아져 나오고 있습니다. 모두다 인증 받았다고 광고를 하니 헷갈리게 됩니다. 그래서 누구나 들으면 알 수 있는 제품들을 구매하지만 이름값으로 인해 좀 더 비싼 것은 사실입니다. 그렇다고 싸다고 샀다가는 낭패를 볼 수 있어 소비자 입장에서는 난감한 상황입니다.
그런데 식품의약품안전처 [의약품 안전나라] 사이트에서 회수 및 폐기 조치를 받은 마스크 업체들을 확인해 볼 수 있더라고요. 최신 정보들을 업데이트 되기 때문에 링크를 통해서 확인해 보면 좋을 것 같습니다.
홍성은 매년 5월 셋째 주 주말 역사인물과 만나는 축제가 진행됩니다. 왜냐하면 홍성에는 역사적인 인물들이 많이 배출되었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독립운동 정신의 요람입니다. 홍성의 역사인물을 나열하면 고려의 명장 최영장군, 조선의 절신 성삼문선생, 청산리 전투의 김좌진장군, 일본에 항거한 한용운선사, 전통춤의 대가인 한성준선생, 한국 회화의 독창성과 정체성을 확립한 이응노화백 등이 있습니다.
따라서 홍성의 ‘에듀테인먼트(Edutainment)’ 과거의 역사인물을 만나는 교육적인 축제입니다. 5월 가정의 달에 초등학생과 꼭 가봐야할 여행코스입니다. 역사적인 공간인 ‘홍주읍성’에서 개최되는 역사인물축제는 인물과 관련된 주제공연과 인물별 업적과 일대기를 직접 접해보는 체험프로그램 등을 통해 위인전 책속으로 여행하는 색다른 경험을 제공합니다. 또한, 읍면의 특색음식과 대한민국 브랜드 대상을 수상한 ‘홍성한우’ 등 홍성의 우수한 먹거리도 축제기간 행사장을 방문하시면 저렴하게 만나볼 수 있습니다.
홍성 관광지도(출처: 홍성군청)
독립운동 정신이 잘 담겨있는 홍성은 내포신도시에 들어 갑니다. 내포신도시는 홍성군 홍북읍, 예산군 삽교읍 일원이 포함되는 계획 도시입니다. 내포신도시는 충청남도의 상생발전과 지역통합에 의한 공동번영을 실현하기 위한 지속가능한 충남발전을 선도하는 LOHAS형 신도시 건설로 도시건설의 기반이 되는 생태도시, 안전도시, U-city의 개념을 중심으로 전체적인 도시계획의 기초를 이루게 되고, 도시의 주요 성격 및 기능을 담아내는 Triangle City 즉, 첨단산업도시, 통합형 행정도시, 건강복지도시가 3가지 주요 개발방향으로 설정하였습니다.
발길마다 즐거운 홍성 여행 코스는 홍성군청 홈페이지(www.hongseong.go.kr/tour/sub02_010102.do)에 잘 마련되어 있습니다. 홍성군청 페이지를 통해 좋은 정보를 얻어 가시면 좋을 것 같습니다. 역사, 박물관, 미술관 코드 등 홍성군의 여행 코스들이 잘 안내 되어 있습니다.
홍성 박물관 미술관 당일 여행 코스(출처 : 홍성군청)홍성 역사유적 당일 코스(출처 : 홍성군청)
홍성의 천혜의 섬 죽도
홍성군 서부면 서쪽에는 홍성군 유일의 유인도인 죽도가 있습니다. 죽도는 천수만 내에 위치하고 있는 작고 아름다운 섬으로 낭만과 자연이 그대로 보존된 천혜의 섬입니다. 섬주위에 대나무가 많이 자생하고 있어 죽도라 불립니다.
우럭, 대하, 바지락 등 풍부하고 싱싱한 해산물을 사계절 맛볼 수 있으며, 해돋이와 해넘이를 동시에 감상할 수 있고, 섬에서의 갯벌체험은 가족에게 소중한 추억거리와 생활의 활력소가 될 것입니다. 홍성읍 소재지에서 갈산면을 거쳐 서부면 남당리에 도착, 남당항 바로 앞 약 3.7㎞ 지점에 있으며 배를 타고 15분정도 들어가야 합니다. 올망졸망한 8개의섬이 달라붙어 있으며 24가구 70여 명이 사는 유인도로 물이 빠지면 걸어서 돌아볼 수 있습니다. 여유가 되시면 죽도로 낚시 여행을 계획해 보시는 것도 좋을 것 같습니다.
겨울은 춘천의 닭갈비가 생각나는 계절입니다. 또한 남이섬과 명동은 많은 관광객이 찾는 곳이기도 합니다. 조선조 세조때 이시애의 난을 막고 25세에 병조판서 되었다가 역적으로 몰려 28세의 젊은 나이에 요절한 남이장군(1441~1469)의 전설을 간진한 반달모양의 남이섬은 드라마 '겨울연가 ' 촬영지로 유명합니다. 또한 젊음과 문화가 살아 숨쉬는 거리 춘천 명동은 각종 의류, 생활잡화, 식당가들이 빼곡하게 들어차 있어 쇼핑하러오는 관광객들로 인산인해를 이룹니다.
강원도하면 깊은 산골을 생각하겠지만 순천은 서울과 가까워서 당일 치기 여행이 가능한 곳입니다. 또한 서울에서 속초 여행시 춘천 코스를 넣으셔도 좋습니다. 물론 아무 준비 없이 순천을 가시기 보다는 관광 지도를 참고하셔서 순천의 갈만한 곳들을 계획하시고 가시면 좋습니다.
(서울 -> 춘천 -> 속초)
춘천은 고대 부족 국가인 맥국의 수도였지만, 신라에 정복하여 선덕여왕 6년에 우수주(牛首州)라 부르고 군주(君主)를 두었습니다. 태종 13년(1413) 춘천으로 고쳐 군이 되고 1415년 도호부, 고종 24년(1887) 춘천 유수군을 두고, 이궁을 신축하여 위급할 때의 피난지로 지정했습니다. 즉 여러 역사적 문화유산들도 많은 곳입니다.
부산은 가볼만한 여행 코스가 참으로 많습니다. 역시 제2의 도시 다운 면목을 자랑합니다. 여행 코스가 너무 많다 보니 처음 여행시에는 코스를 잡는데도 많은 시간이 걸립니다. 만약 부산 여행이 처음 이시라면 공신력 있는 부산관광공사에서 제안하는 코스를 먼저 공략하는 것이 가장 성공적인 여행 코스가 될 겁니다.
부산은 시민이 행복한 동북아 해양수도를 꿈꾸고 있답니다. 해양수도로 거듭나기 위해 가장 시급한 문제는 바로 일자리 부족을 채우는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사실 부산 사람들의 자존심 제2의 도시는 인천으로 옮겨가고 있는 상황입니다. 부산의 많은 청년들이 먹고 살기 위해 서울로 향하고 있어 안타까운 상황입니다. 부디 제2의 도시 부산으로 다시 발돋움하길 빌어 봅니다.
2019년 부산 방문 관관객 실태조사를 따르면, 부산 관광 전반적인 만족도에 외국인(1,006명 설문 참여)은 89.6점, 내국인(1,025명 설문 참여)은 84.8점을 매겼으며, 재방문 의향을 물어보았을 때 외국인은 90.6%, 내국인은 97.4%가 다시 방문할 의사가 있다고 대답했습니다.
부산을 방문한 목적은 관광, 여가, 위락, 휴가를 위해서 방문했으며, 외국인과 내국인 모두 부산 관광지를 선택할 때 가장 고려를 많이 한 것은 음식/미식 탐방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다음은 자연풍경 감상이었습니다.
외국인이 가장 많이 경험한 음식은 돼지국밥, 씨앗호떡, 삼겹살 이었고, 내국인은 생선회, 꼼장어 요리, 돼지국밥 순이었습니다.
부산의 아름다운 관광 이미지 (출처 : 부산관광공사)
부산관광공사에서는 여행객들에게 부산을 충분히 알 수 있도록 부산의 다양하고 아름다운 자료들을 제공하고 있습니다. 특히나 부산의 모습을 포스터로 만들어 무료 배포하고 부산을 더욱 풍성하게 만드는 것 같습니다.
보이는 대로 들리는 대로 상상하는 대로 싸이버 보이는 대로 들리는 대로 상상하는 대로 싸이버
거실로 기차를 타고 가자 부엌으로 기차 타고 가자 공부방으로 기차 타고 가자 기차로 생일 케익 하자 기차로 햄버거를 하자 기차타고 시계로 들어가자
향기 나는 노래를 틀자 비누 방울로 집을 짓자 숫자로 꿈꾸자 꿈을 꾸자 뚜껑으로 두꺼비를 하자 영화로 버선을 하자 김치로 옷을 지어 입어 보자
보이는 대로 들리는 대로 상상하는 대로 싸이버 보이는 대로 들리는 대로 상상하는 대로 싸이버
서울 자전거길 안내지도(출처 : 서울특별시)
제주도의 올레 코스를 하나씩 정복하기 위해 제주다를 방문하는 관광객들이 있듯이... 서울에도 자전거로 여행이 가능한 코스들이 있으면 좋겠습니다. 지하철과 잘 연계 되어 빌리고 맡기고 이동할 수 있도록 말입니다.
상주 자전거 박물관 @ Wizztour.com
그리고 보니 아이들과의 상주에서 자전거 박물관이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아이들이 처음으로 자전거에 관심을 가졌던 곳입니다. 낙동을 따라 상주도 자전거 여행을 하기 좋지만... 지자체별로 아름다운 자전거 길들을 마련되어 있습니다. 나도 잘 몰랐는데 명품 자전거길 소개가 되어 있어 공유해 봅니다.
명품 자전거길(출처 : https://www.bike.go.kr/)
하루빨리 코로나가 끝나고 일상으로 돌아가면 가까운 곳으로 가족들과 자전거 여행을 떠나보고 싶습니다.
중국 지린성(길림성) 지안현(집안현)에 있는 무덤입니다. 고구려 귀족의 무덤일 것이라고 짐작할 뿐 이 무덤이 언제 만들어졌고, 누구의 무덤인지는 아직 모릅니다. 아마도 영원히 무덤 주인은 비밀로 남겠죠?
무덤칸은 안길, 앞칸, 사잇길, 안칸으로 이루어졌으며, 그 방향은 서 남향이다. 안칸의 천정은 8각고임천장이고, 앞칸은 궁륭천장이다. 안길은 길이 1.4m 이고, 앞칸은 길이 약 1.0m, 너비 약 3.3m이며, 안칸은 길이 약 3.2m, 너비 3.2m이다.(출처 : 국립문화재연구소)
왜 무용총(춤무덤)이라고 부를까요? 그 이유는 무덤 안쪽 벽에 춤을 추는 사람들의 모습이 그려진 무용도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들을 지켜보는 인물(주인공)이 있답니다. 물론 무용도 이외에도 다양한 그림이 남아 있습니다. 우리들이 잘 알고 있는 수렵도도 무용총에 있는 벽화입니다.
무용총 벽화는 회벽 위에 그려져 있는데, 안쪽 벽에 실내생활, 앞쪽 벽에는 나무, 왼쪽 벽에는 사냥 장면, 오른쪽 벽에는 춤과 부엌을 그려 넣었습니다. 천장에는 해, 달, 별, 청룡, 백호, 비천, 신선, 기린과 구름무늬, 연꽃무늬 등을 그렸습니다. 앞칸 좌우 벽에는 나무, 건물, 기마인물 등을 그려져 있습니다.(참고 : 국립문화재연구소)
이런 그림들을 통해서 당시 고구려 사람들이 어떻게 살았는지 추측할 수 있는 좋은 자료가 됩니다.
무용총(춤무덤)의 벽화에서 본 떠 복원하였음(출처 : 국립문화재연구소)
무용총에 있는 벽화들
무용총 정면 벽에는 무덤 주인공이 손님을 맞이하는 모습을 담은 접객도가 있습니다.
무용총 안쪽 앞쪽 벽 벽화 모습(출처 : 국립문화재연구소)
고구려 귀족과 스님으로 보이는 인물이 대화를 나누는 모습입니다. 당시 스님들은 치마를 입었다는 것과 귀족과 스님의 모습은 크게 그렸고, 시종은 작게 그린 것으로 보아 신분제 사회임을 알 수 있습니다.
무용총의 접객도(출처 : 국립문화재연구소)
벽화는 일반인들의 눈으로 보면 구분하기 엄청 어렵습니다. 대부분 복원해서 구분할 수 있도록 했기 때문에 일반인들도 감상할 수 있습니다.
요즘도 많은 해석과 이야기를 나오는 다빈치의 작품 [최후의 만찬]도 밀라노의 산타 마리아 델레 그라치 수도원에서 직접 가서 보게 되면 인터넷에 떠도는 이미지가 더욱 선명하고 훌륭하게 느껴질 겁니다.
출처 : 살아있는 한국사 교과서
아무튼 오른쪽 벽에는 무용수들이 긴 소매를 어깨 뒤로 늘어뜨리고 춤을 추는 무용도가 있습니다.
무용도에는 지휘하는 한 사람과 다섯 명의 무용수가 말을 타고 있는 주인 앞에서 춤을 추는 모습이 그려져 있습니다. 그 아래에는 일곱 명의 남녀가 합창을 하는 모습도 있습니다.
무용총 벽화(출처 : 국립문화재연구소)
무덤 안쪽 벽에는 두 채의 기와집과 음식상을 들고 나르는 여인들의 모습이 그려져 있습니다.
무용도 벽화 배치도(출처 : 국립문화재연구소)
출처 : 한국 미의 재발견 - 고분미술
왼쪽 벽에는 사냥하는 장면이 그려져 있는 수렵도가 있습니다. 수렵도에는 호랑이와 사슴들, 그리고 물결무늬처럼 표현된 산이 생생하고 세밀하게 그려져 있습니다.
무용총 수렵도(출처 : 국립문화재연구소)
수렵도 그림을 자세히 보시면 화살촉이 뾰족하지 않다는 것을, 그리고 선명한 등자가 보입니다. 또한 달리는 말에서 뒤를 돌아보고 활을 쏘는 모습을 통해 당시 고구려가 기병으로써 얼마나 훈련이 잘 되었는지 알 수 있는 장면입니다.
출처 : 국립문화재연구소
중국 역사서에는 "고구려 사람들이 활쏘기를 아주 잘했다."는 기록이 있는데 그것을 증명해 주는 그림입니다.
천장에는 사람 얼굴을 한 새와 거문고를 타는 선인 등이 그려져 있어 고구려의 세계관을 엿 볼 수 있습니다.
평창 올림픽에서 인면조가 등장하는데... 고구려의 덕흥리 고분벽화에서 영감을 얻었다고 말했습니다. 상상의 새 인면조는 무용총에서도 그려져 있습니다. 지금의 우리에게는 낯설지만 당시 고구려인들에게는 친숙한 이미지였나 봅니다. 바로 아래 왼쪽 사진 오른쪽 구석 중간 부분에 인면조가 그려져 있는데 아쉽게도 얼굴 부분이 지워져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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