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포항 구룡포 과메기 축제를 다녀오다 [국내여행: 포항 구룡포]

오늘로 제 15회를 맞이하는 과메기 축제장에 다녀왔다.

역시나 많은 차들로 도로가 몸살을 겪고 있었다.


겨우 주차할 곳을 찾아 몸을 빠져 나와 행사장에 도착하니...

스페인 항구 도시인 바르셀로나가 생각났다.


특히나 아름답게 꾸며진 구엘공원이 말이다.

아무래도 그 영향을 받아 꾸며 놓은 것 같았다.

하지만 배경이 너무 아쉬웠다.


<출처:http://blog.naver.com/shc4883?Redirect=Log&logNo=139029562>



포항 구룡포 과메기 축제


뭐 이런들 어떠하고 저런들 어떠하리....

나름대로의 장단점이 있는 법.....

스페인의 빠야가 있다면 포항시의 자랑 과메기가 있지 않은가!!!



Fermented fish (과메기 / Kwamegi)
Fermented fish (과메기 / Kwamegi) by annamatic3000 저작자 표시비영리변경 금지

청정해역 동해에서 갓 잡은 신선한 꽁치를 섭씨 영항 10℃의 냉동상태로 두었다가

12월부터 바깥에 내다 걸어 자연상태에서 냉동과 해동을 거듭하여 밤에는 얼고 낮에는 녹으면서

발효하여 말린 것으로 옛날 궁중의 진상으로 올렸을 만큼 맛이 좋고 영양가가 풍부한 건강식품이다.


특별히 구룡포 과메기만의 특징이라면...

백두대간을 넘어온 겨울철 북서풍이 영일만을 거치면서 습기를 머금고 

다시 한번 산을 넘어 오면서 습기를 넘겨주어 건조해지고 차가워진다.

이 건조한 북서풍이 과메기를 꼬들꼬들하게 말려주며 맛을 낸다.


청저해역 동해에서 어획해서 무공해 바닷바람에 자연건조한 과메기는

고단백질 식품으로 불포화지방산 EPA와 DNA 함량이 풍부하며 

혈관확장 작용을 해서 성인병 예방에 도움이 된다.

과메기는 11월 부터 2월까지 만들어 진다.


구룡포에는 과메기 뿐만 아니라 7월부터 11월 말 까지는 피데기로 유명하다.

피데기는 중성기질을 억제하는 EPA가 풍부하며

머리를 좋게하는 DHA와 간장해독작용을 하며

성인병을 예방하는 DHL성분이 다량 함유되어 있다.

노화방지와 장수식품으로 좋다.

특히나 일반 마른 오징어의 수분 함량은 18~20%인데 비해 피데기는 30~35% 수준이다.


영덕과 더불어 구룡포는 대게로도 유명하다 11월 1일 부터 5월 30일까지 맛을 경험할 수 있다.

구룡포 대게의 특징은 

누런 주황색을 띄며 속살은 눈같이 희고 꽉 차 있다. 약한 단맛과 담백하고 쫄깃하며 껍질이 부드럽다.


단백질 함량이 놓고, 필수 아미노산이 풍부하며, 지방 함량이 적고 해열 및 해독작용에 우수하다.

껍질에는 키토산과 타우린산이 다량 함유되어 있어 발육기 어린이와 회복해야 하는 환자 

그리고 노약자 및 골다공증에 시달리는 분들에게 좋다.

면역력 강화, 간기능 강화, 생체리듬 조절 능력과 미용 작용, 피로 예방과 회복 작용을 돕는다.


이것들을 다 맛보기 위해서는 지갑을 두툼하게 할 필요가 있다.


포항에서 또 빼먹을 수 없는 것이 바로 물회이다.


포항 구룡포에서 물회


물회 먹는 법은 간단하다.

손이 가는데로 일단 먹으시라.... 후후


돌솥에 물을 넣으면 구수한 누룽지가 되듯이....

물회는 반대로 하면 된다.


밥그릇에 찬물을 넣어 밥을 식히고

그 사이 비벼 놓은 회를 조금 먹어 보면서 회의 맛을 음미하자.


따뜻한 밥을 넣어 비비면 회의 맛이 떨어진다.

그 이유가 궁금하 거든 '미스터 초밥 왕'을 읽어 보시라.


식은 밥을 넣고 비비면... 또 다른 맛의 축제로 인도할 것이다. 


역쉬 바다는 싱싱한 횟감들이 있어 좋다.

자자~ 기나긴 겨울 몸보신을 위해 포항 구룡포로 떠나자!!!


트램(Tram)을 올라타서 시간을 여행을 하다 [동유럽 체코 프라하 이색 여행]


트램(Tram)을 올라타서 시간을 여행을 하다 

[동유럽 체코 프라하 이색여행]


프라하를 구경하는데 Tram을 이용하지 않을 수 없죠…


거미줄(?)처럼 이어져 있는 Tram은 정말 고마운 존재죠…

승강장에 붙어 있는 A4 용지에는

도착시간과 목적지까지의 예정시간이 적혀 있습니다.

거의 정확하다고 보시면 됩니다.

시계가 없다고요?

프라하에는 시계가 많이 있답니다.

주위를 돌아 보세요. 불빛 때문에 밤에 더 찾기 쉽죠. ㅎㅎ

만약 도착 시간에 오지 않는다면…

공사로 노선이 변경되지 않았나 의심해 봐야 합니다.

 

Tram은 여러 종류가 있는데…

옛날 것은 좀 낡았고 요즘 것은 애벌레 모습처럼 생겼습니다.

참고로 사진에 나와 있는 Tram은 신형 모습이랍니다.

신형이라서 내부가 깨끗합니다.

구형은 내부도 좀 칙칙하고 낙서가 많습니다.

그래도 일단 신기하고 저렴한 교통 수단입니다.

 

Tram 겉에는 신형 말고 구형들은 전면 광고를 많이 달았습니다.

 그래도 자랑스런 삼성(Samsung)은 깔끔하게 했네요.

때로는 낙서한 것처럼 혼잡한 광고들도 있답니다.

Tram은 24시간 운영이 됩니다.

물론 야간 Tram은 따로 운행이 됩니다.

아침에 탔던 번호를 기다리면 절대 안 오죠…

그리고  운행 시간도 뜸하게 있습니다.

그래도 비싼 택시보다 훨씬 좋죠.

 

한번 Tram을 타고 프라하 전 지역을 돌아 다녀 보세요.

아~ 타기 전에 승차권은 구입하셔야 하는 것 알죠???

무임승차… 글쎄요…

표 검사하는 아저씨에게 안 걸릴 자신이 있다면… 도전해 보세요.

걸리면… 벌금을 물어야 합니다.

표 검사원들 덩치가 산만해서 압도당하죠… ㅋㅋ

스페인 바르셀로나의 해변을 걷다 [스페인 바로셀로나 여행]


스페인 바르셀로나 해변가의 요트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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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라하에서 환전해야 한다고 왜? 씨티은행이 있는데...!!! [동유럽 여행:환전]

체코 프라하에서 시티은행으로 환전하기


체코 프라하 여행에서 환전하기는 쉬운 편이다. 관광 도시 답게 여기 저기에 환전소가 있다. 하지만 말도 잘 안 통하고 커미션이 생각보다 다르게 나올 수 있다.

뭐 뒷골목에 끌려가서 빼앗길 수 있다고 생각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런 일은 아주 드문 일 같다.

 

씨티은행 국제현금카드


하지만 가장 안전한 것은 역시 씨티은행인 것 같다. 오직 체코에서만 Kč(코룬)이 통용되니... 얼마나 바꿔야 하는지도 모르고 좀 거시기 하다.

 

그래도 대충 환전을 해야 하니... 한끼 음식을 기준으로 하면 200~400Kč 잡으면 된다.

24시간 대중교통(지하철, 트램, 버스)을 이용할 수 있는 표는 100Kč이다. 관광 입장료는 별로 안 들어 간다. 여기 1Kč은 편하게 한화 70원(요즘 조금 떨어지고 있는 추세)으로 계산하면 된다.

(예 100Kč은 100*70=7,000원)

 

아무튼 복잡하다. 환전소 기웃 거린다 시간 보내지 말고... 그냥 씨티 은행가서 뽑자... 수수료 1달러를 지불하면 끝이다. 당연 Kč으로 나온다.

 

그럼 씨티 통장에는 어떻게 표기 될까? 궁금한 분들을 위해서...

씨티은행 국제현금카드 사용

 

CZK는 체코 돈으로 얼마를 인출했는지 보여지고, 그 돈을 환율로 계산해서 한국돈 얼마가 빠져나갔는지 보여준다. 14,800Kč을 찾는데 수수료 1,173원 제외하고  995,220원을 들어 갔다는 것이다.

 

여기서 계산기 두드리는 분 있을 것이다. 아까 70을 곱하라고 했는데... 14800*70=1036,000원 이잖아라고 말하시는 분은... 쩝 70을 곱하라는 말은 그때 그때 환율 따지지 말고 쉽게 계산하라는 의미이다.

 

아무튼 12월 9일자에 뽑은 환율을 계산해 보면 1Kč에 67.24원이다. 11월 17일은 68.48원 이었다... ㅋㅋ 편안하고 안전성을 생각하면 씨티 은행이 정말 좋다.

 

아무튼 요즘 시세가 점점 떨어지고 있어서 약간 기분 업... 비스타 위젯에 나온 시세는 64.53원 이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비스타 위젯에서만 가능하다. 몇 년전만 해도 1Kč에 40원 이었다고 하는데... 유로 때문이지... 엄청 올랐다.


아래는 씨티은행 수수료 안내이다. 

 

수수료안내

(환율 1,100원 / $ 적용 시)

씨티은행 국제현금카드국내 타행유사상품
수수료/
네트워크
주요35개국
씨티ATM
미국중국전세계 VISA
제휴ATM
전세계VISA / 
마스타제휴 ATM
CITICITI세븐일레븐NYCESTARCITIPLUSVISAVISAMASTER
인출수수료
(Issuer)
US $1US $12,000 원US $12,000 원2,000 원US $2 ~ 3.5
네트워크수수료무료무료무료무료무료인출액의 0.85%인출액의 1.1 ~ 1.2%
현지수수료
(Acquire)
무료무료US $0.5 ~ 5.0무료US $0.08 ~ 1.26US $0.5 ~ 5.0US $0.5 ~ 5.0
300불 인출시
수수료사례
1,100원1,100원5,025원1,100원2,737원7,830원9,845원


체코 프라하 시티 은행(citi bank) 찾기 [동유럽 여행: 프라하 시티은행]


이럴 수가 여행자에게

너무나도 좋은 시티 은행이...

 


여행의 시작점이라 할 수 있는

Můstek(무스텍)에서 시티 은행이 사라져 버렸네요....

이곳에서 헤매지 마시길....

 

Citi never sleeps? Citi can naver sleep.
Citi never sleeps? Citi can naver sleep. by redslmdr 저작자 표시비영리동일조건 변경허락


무스텍에서 가장 가까운 시티은행은

Revolučni 6(Praha 4)에서 만날 수 있습니다.

 

26번 Tram을 이용하면 좀 더 편할 수도...

 

팔라디움이라는 백화점 근처입니다.

그곳에서 스타벅스에 들어갑니다.

공짜 지도를 들고 나옵니다.

지도를 펴면 스타벅스 위쪽으로 Revolučni(레보루찌니)라는 거리가 보입니다.

 

자 걸어갑니다.

무슨 호텔 지나서 시티은행인데...

그냥 걷다 보면 지나치기 쉽습니다.

 

시티 은행을 찾았다면 카드를 넣고 여비를 뽑습니다. ㅋㅋㅋ


굳이 시티은행을 찾아 다니지 않아도 됩니다.

테스코에 있는 현금 지급기 CITI라는 문구가 나오면 다 뽑을 수 있습니다.

물론 은행에서 뽑는 거랑 약간 수수료 차이가 있는데 몇 백원 차이니 이동경비 생각해서 뽑으시면 됩니다. ㅎㅎ

프라하 체코에서 신분증을 요구할 때 여권 복사본을 내밀면... [동유럽 여행: 체코 프라하]

간혹 체코에서는 여권 검사를 한다. 

'인종차별'이라며 민감하게 반응하는 사람도 있지만 거기까지는 아니다.


오히려 검사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한다.

여행 기간 전에 어떤 외국인으로 인해 문제가 발생했다면
자국민의 안전을 위해서 경찰들이 해야 할 조치가 아닌가!

그런데 대부분 한국 관광객은 무슨 이유에서인지 여권을 소지하지 않는다.
잃어 버릴 것이 두려워서일까? (좀 귀찮기는 해도 대사관을 통해 임시 여권을 받을 수 있다.)
아니면 가이드의 친절한 안내 때문일까? (여행지에서 여권 소지는 의무이며 벌금을 부과할 수 있다.)
당신의 신분을 보장해 줄 유일한 증명서는 "여권"뿐이라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란다.

당당하게 복사본을 제시하면 되는 것으로 착각하는 사람도 있다.
(심지어 칼러 복사를 하는 사람도 있다. 경찰은 당신을 더욱 의심의 눈초리로 볼 것이다.)
난 한번도 복사본으로 통과해 본 적이 없다.

그 모든 것을 떠나서 당신이 검문을 받는 다는 것은
당신의 행동이 의심스럽다는 것이다.
경찰관의 과학적 수사(직감)에 의해 당신이 지목된 것이다.
그렇다면 당신의 행동에 뭔가 문제가 있었다는 것이다.

가령 복장이 관광객처럼 보이지 않았다거나,
당신의 시선과 표정이 뭔가 쫓기는 사람처럼 보였거나,
당신도 모르게 경찰과 시선을 피했거나,
당신의 인상(?)이 그리 썩 좋지 않기 때문일지 모른다.

물론 위의 이유가 아니더라도 검문을 당할 수 있다.

하지만 그 이유가 어찌되었던 검문에 응해야 한다. 그 법이 그렇다. 


그 점을 이용해서 많은 소매치기가 성행하는 곳이 또 관광지이다. 

경찰처럼 행사하면서 검문을 이유로 신분증 제시를 요구하고 지갑을 통째로 들고 도망간다.

(지갑이 아니라 여권을 제시해야 한다.)

사실 그렇게 서둘러 도망가지도 않는다. 그렇다고 무턱대고 뒤쫓아가는 어리석은 짓은 위험하다.

대부분 조직적으로 하기 때문에 지갑 뿐만 아니라 당신 몸 통째로 들고 갈 수 있다. ^^;


아무리 경찰이더라도 당신에게 함부로 할 수 없다는 사실을 기억하시기 바란다.

대한민국 국민으로 보호를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먼저는 체코 경찰이 맞는지를 확인해야 한다. 특히나 이상한 골목길이라면 더욱 의심해 봐야 한다.

주요 관광지에는 경찰이 많이 배치 되어 있다.

정말 의심이 된다면 그들에게 가서 검문 받는 것을 요청하는 것도 좋은 방법이다.


아래 체코 경찰 복장 이미지를 잘 기억해 두기 바란다.


프라하 체코에서 신분증을 요구할 때 여권 복사본을 내밀면... 벌금을 내야 한다!!!


비엔나 성 베드로 성당 안내도 [동유럽여행:오스트리아 비엔나]

유럽 어디를 가든 있는 성당...


그 중에서도 예수님의 수제자 베드로의 이름으로

지어진 성당이 많다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그래서 여행하고 나면 헷갈리는 것도 사실이다.



즐겁게 여행하고 그 추억을 오랫동안 간직하기 위해서는

열심히 그리고 자세히 살펴보는 것이다.

물론 인증샷도 꼭 필요하다.


비엔나에 있는 성 베드로 성당을 좀 더 꼼꼼하게 살펴보기 위해서

성당 안내도를 준비해 봤다. (성당 입구에 한글 안내서가 있다.)


 성 베드로 성당


평면 안내도


1. 성당 정문

2. 현관 - 오르간

3. 천장 벽화

4. 강론대

5. 성 요한 네포묵 제대

6. 황제 레오폴드 1세 문양

7. 중심 제대

8. 성녀 바바라 제대

9. 성 세바스티안 제대

10. 성 가정 제대

11. 성 미카엘 제대

12. 성 프란치스코 살레시오 제대

13. 성 안토니오 제대

14. 칼 대제의 부조상

15. 성 미카엘상과 성 베드로 상

16. 제의실

17. 강론대 입구

































로마 시대 비엔나의 첫 성당으로 건축되었고 후대에 두 개의 회랑을 갖춘 로마식 형태로 증축되었다.

18세기 Lukas von Hildebrand에 의해 현재 모습의 성당으로 개축 되었다.


바로크식 성당의 중심 제대(7번)와 화려한 강론대(4번), 아름다운 천정벽화(3번)을 감상할 수 있다.

중심제대(7번)의 그림은 M. Altomonte의 작품으로,

예루살렘 성전 입구에서 한 절름발이를 치유하는 사도 베드로와 사도 요한을 표현한다.


아쉽게도 수리중이라서 그림은 볼 수 없었다.


역시 천정의 벽화를 보고 있노라면 고개가 아프다.

하지만 매일 땅만 보고 살다 가끔 이렇게라도 고개를 들어야 하지 않을까 싶다.


베드로 성당 안내도 [비엔나 여행:동유럽오스트리아 여행]

안동의 찜닭을 먹고 하회 마을을 걷다 [안동여행:가족여행추천]


안동 찜닭을 먹고 하회 마을을 걷다

안동 찜닭도 궁금했거니와 2시 탈출 라디오에도 나오고 종종 TV에도 나왔기 때문에 궁금했다. 누구나 한번쯤은 하회마을 이야기를 듣지 않았던가?

옛 모습을 그대로 갖추고 있는 마을... 그리고 대대로 내려오는 탈춤 등등...
부푼 기대감을 가지고 안동을 향했다.

먼 걸이를 달려왔기 때문에
먼저 들린 곳은 안동 찜닭집이었다.
당연 유명한 곳을 몰랐기 때문에 114에 문의를 했다.
이상한 사람 취급만 당하고 택시 기사 아저씨에게 물어보고 겨우 안동시장으로 향했다.

안동 닭이 유명해서 일까? 아니면 찜닭으로 유명해서 일까?

사용자 삽입 이미지

시장 입구는 숫닭이 지키보고 있었다.
관광차에서 내리는 사람들...
가족끼리 가는 모습들...
단순히 시장으로 장보러 가는 분위기는 아니었다.

그 모습을 보니 안심이 되었다.
그리고 드디어 안동찜닭을 먹는 구나...
역사적인 순간이었다.

여기서 잠깐 안동찜닭의 유래를 살펴보자.
여러설이 있다. 
조선시대 부유한 안쪽 동네에 살던 사람들이 특별한 날에 해먹던 닭찜을 가난한 바깥 동네 사람들이 보고 안동네찜닭이라 부르기 시작했다는 설과 1980년대 안동 구시장에서 손님들의 요구대로 이런저런 재료를 넣다가 찜닭이 되었다는 설이 있다. 뭐 이런들 어떻고 저런들 어떠하랴 맛나게 먹으면 그만이지...

배고픈 배를 달래기 위해서 시장을 들어서니...
쭉 들어서 있는 안동찜닭집들... 도대체 어디를 들어가야 한단 말인가?

원조라고 하고 가보면 옆집이 원조고, 오랜 전통을 자랑했던 집이 알고 보니 어제 생긴집이고...
하도 많이 당한 터라 고민에 고민을... 배고픔에도 장고하면 왔다리 갔다리 했다.

그때 장보러 나오신 아주머니께서 한 집을 소개해줬다.
대전에서 이곳으로 이사와서 다 다녀봤다면서 하신 말씀이...
어디 가나 다 맛있다는 것이다. 하지만 자기 입맛에는 저곳이 좋다면 알려주셨다.
그 가게만 맛있다면 상호명을 공개하겠으나 안동은 다 맛있음으로 비공개로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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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동찜닭의 맛은 일품이었다. 싼 가격에 푸짐한 안동찜닭들... 먹어도 먹어도 끝이 없었다.
글을 쓰는 지금 그 맛을 다시 느끼고 싶다. 통닭으로는 따라올 수 없는 그맛...을

이젠 배도 불렀으니 하회마을로 향했다.
그런데 이런...
표지판이 도무지 보이지 않았다. 길도 그다지 좋지 않았다...
고불 고블한 길을 달리면서 맞게 가고 있는지 의심스러웠다. 몇번 차를 돌릴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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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래도 인내심을 가지고 계속 달렸다.
한참을 가서야 하회장터가 나왔다.

주차를 시켜놓고...
하회장터를 돌아봤다.

이곳에서도 음식점이 있으니...
구시장을 가기 힘드신 분들은 이곳에서 해결해도 될 것 같다.

탈 박물관도 있고 악세사리들이 있었는데...
좀 아쉬웠다.
중국제품도 있기 때문이다.
이러니 뭐가 전통물건인지 알수 없지 않은가?

한우가 안 팔리는 이유는
비싼 값도 있겠지만 그것보다는...
진짜 한우인가가 의심스럽기 때문이다.

밖에서도 구할 수 있는 중국제품들은 빠지고...
어느 관광지에 가도 있는 녀석들도 빠지고...

그 지역에서만 볼 수 있는
귀한 물건들이 있었으면 하는 아쉬움이... 남았다.
뭐... 생계유지가 이유라면 더 이상 할 말은 없다만서도... ㅋㅋ

아무튼 반가운 하회탈도 써보고... 인형도 보면서 돌아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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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하회마을로 가려는 순간 비가 오기 시작했다.
하회마을을 들어가기 위해서는 버스를 타야 한다.
들어가서는 천천히 걸어다니며 전통마을을 돌아봐야 한다.
그러니 충분히 시간을 두고 들러야 한다.

하지만 우리는
우산도 없고...
보면서 설명해 줄 아이도 없고...
우리는 민속촌과 전주 한옥마을도 봤고...
다음에 아이가 생기면 다시 오기로 하고... 진해로 이동했다.

뭐 원하는 곳에 가지 못해서 아쉬웠지만...
이렇게 남겨놓고 다녀야 다음에 다시 오지 않겠는가?
다음에 아이랑 왔을 때 더 좋은 진입로와 더 풍성한 볼거리가 있길 기대하면서...


코엑스 아쿠아리움 [서울 유아 동반 갈만한 곳 추천]

코엑스 아쿠아리움

[서울여행:유아동반여행추천]


코엑스 아쿠아리움은 휴일은 없는 여행 장소이다.

오전 10시부터 오후 8시까지(입장은 오후 7시까지) 가능하며, 요금은 기본 19,500원, 학생(경로) 16,500, 어린이 14,000원 이다. 유아는 48개월 미만이며 장애인은 할인해 준다. 할인 카드는 따로 없으며 오직 연간회원권과 가족권이 있다.


미소 짓는 게

(마치 웃고 있는 모습이 아주 귀엽다.)


가족여행시 미리 구입하면 좋은데 현장에서는 판매하지 않기 때문이다. 

AK몰, 인터파크, GSeshop 홈페이지를 통해서만 구입이 가능하다.

약 20%정도의 할인을 받을 수 있으며 결제 후 3일 부터 수령이 가능하다.

수령 방법은 현장에서 받는 방법과 배송받는 방법이 있는데 현장 수령으로 하는 것이 좋을 것 같다.


아이와 함께 돌아 보았는데 뭐니 뭐니해도 피딩시간(먹이 주는 시간)을 잘 보고 움직여야 한다.  

 피딩시간 참조 << 클릭


시간대를 잘 맞춰서 멋진 쇼를 볼 수 있었다.



상어 이미지



수족관 물고기 이미지


서서 헤엄치는 물고기


아이를 동반한 여행지로는 손색이 없다.

365일 연중무휴라는 장점도 있다. 

비가 오거나 눈이 오거나 더운 여름에도 쾌적한 시간을 보낼 수 있어 좋다.


이곳 저곳에 마련된 포토존과 아이들 놀이방도 좋다.

코엑스 상어 포토존


얀 후스가 프라하에게 남긴 말은? [체코 프라하 인물]


1517년 마틴 루터의 종교개혁이 있기 전 부터 개혁의 움직임이 있었습니다.


영국 옥스퍼드대학의 죤 위클리프(1320~1384)와 

그의 영향을 받은 보헤미아(체코)의 프라하대학 총장이었던 얀 후스(Jan Hus, 1369?~1415)입니다.


옥스퍼드로 유학갔던 프라하 대학생들을 통해 위클리프의 영향을 받은 얀 후스는, 

설교와 논문을 통해, 교황권의 합법성에 의문을 제기하였으며,

면죄부 판매를 포함한 로마 교회의 타락과 세속화를 비난하고, 

성서를 유일한 권위로 인정할 것과 모든 사람들이 성서를 직접 읽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하여,

위클리프가 그랬던 것처럼 자국의 언어 체코로 성경을 번역합니다. 

당시 성경을 번역하는 것 자체가 사형감이었습니다.

결국 로마 카톨릭교회의 미움을 사게 됩니다.


1411년 교회로부터 파문을 당하게 되고,

1414년 신성로마제국 황제의 신변보장 약속을 믿고 

스위스 베른 남쪽 콘스탄츠에서 열린 공의회에 참석했는데 이단자로 판명됩니다.


1415년 6월 7일, 자신의 주장을 철회하기를 거절하고 기둥에 묶여 화형당하고 말았습니다. 

(현재 6월 7일은 체코 국경일로 지냅니다.)


그의 죽음은 민족의식을 일깨우고, 강력한 신앙공동체를 형성하는데 '후스파'라 불리게 됩니다.

1419년부터 교황 마르티누스 5세와 황제 지기스문트의 연합군과 10년이상 전쟁을 벌이게 됩니다.

'타보르'에서 끝까지 항전하지만 패배해 궤멸되어 많은 희생을 치르게 됩니다.


또한, 1619년부터 30년동안 유럽전역을 휩쓴 카톨릭과 종교개혁파 사이의 전쟁이 발생하는데

종교개혁을 지지했던 귀족 27명이 전쟁에 패해 1621년 프라하의 옛 시청광장에서 사형을 당하게 됩니다.

그들을 기념하는 십자가가 그려져 있습니다. 



체코 프라하 구시가 광장체코 프라하 구시가 광장에 있는 얀 후스 동상

얀 후스 서거 500주년을 기념하여 1915년에 세워진 동상으로 7가지 명제가 새겨져 있습니다.


진실만을 찾아라.

진실만을 들어라.

진실만을 배워라.

진실만을 사랑하라.

진실만을 말하라.

진실만을 지켜라.

죽음을 두려워 말고 진실만을 사수하라.


너무도 쉽게 진실을 포기해 버리는 현대인들에게 경종을 울리는 메시지가 아닌가 생각됩니다.


얀후스에 대해 더 알고 싶다면 아래 영상을 보세요.

http://www.cts.tv/program/content.asp?PID=P642&DPID=98357

프라하 구시가 광장의 명물 시계탑 [동유럽여행:체코프라하여행]

동유럽여행:체코프라하여행

구시가 광장에서 휴식(?)을 취하던 사람들이 매시 정각을 되기 전 하나 둘 모여든다.

구시가 광장의 명물인 시계탑을 보기 위해서 이다.

체코 프라하 구시가 광장
체코 프라하 구시가 광장 얀 후스 동상

 

 

여유롭게 먹이를 쪼던 비둘기들은 자리를 내줘야 할 시간이다.

하지만 괜찮다. 너무나도 짧은 시간이기 때문이다. 

 

체코 프라하 구시가 광장
체코 프라하 구시가 광장 시계탑

 

정각을 알리는 종소리와 함께 시계탑 창문이 열리면서 닭과 열두 제자 조각상이 나타난다.

정말 신경쓰지 않으면 그 짧은 공연은 끝나 버리고 만다.

흔히 기대하는 것처럼 뻐꾸기처럼 열두 사도는 나오지 않는다.

 

그래서 뭔가 더 있을 것이란 기대감으로 물끄러미 바라보지만 

하나 둘 흩어지는 무리를 보면서 아 이게 끝임을 알게 된다.

 

너무나도 짧기에 여행 안내자들은 시계에 대해서 열심히 설명해 준다.

"자 보세요. 이 시계는 천동설을 바탕으로 만들어졌습니다. 그래서 땅을 중심으로 한 태양이 움직이는 것을 볼 수 있습니다."

프라하 시계탑
체코 프라하 구시가 광장 시계탑으로 해골 조각상이 보인다.

천문시계의 파란색은 낮과 하늘을 상징하고

검정색은 밤과 달을 상징한다.

갈색은 땅, 새벽, 초저녁을 상징하며,

파란 작은 원은 태양, 달, 북극을 상징한다.

아래는 농사월력으로 12개의 원 속에 12달을 상징하는 그림이 그려져 있다.

자세히 보면 시계 옆으로 조각상이 있는데

왼쪽부터 차례대로 거울을 들고 있고, 주머니를 들고 있고 해골인간과 기타를 들고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각각 거울은 허영심을 주머니는 탐욕을 기타는 쾌락을 상징하고 해골인간은 인간은 곧 죽음을 상기 시켜줍니다.

해골은 죽음을 재촉이라도 하는 듯 종을 흔든다.

 

 

1410년 프라하 대학의 수학교수 하누쉬와 조수 미쿨라셰가 함께 만들었다.

시청사에 그 시계가 걸리자 그 아름다움에 매료되어 그와 같은 시계를 갖길 원했다.

당연 동일한 시계를 요청하기 시작했고, 시의회는 시계를 독점하고 싶은 마음에...

하누쉬를 장님으로 만든다.

장님이 된 하누쉬는 죽기 전에 꼭 한번 만져 보고 싶다고 하여 

시계탑에 올라 시계를 더듬는 순간 시간은 멈춰다가 1860년 부터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다고 한다.

 

그러고 보니 생각나는 책이 있다. [벤자민 버튼의 시간은 거꾸로 간다.]

먹을 수 있는 진달래(참꽃)와 먹을 수 없는 철쭉(개꽃)

봄의 전령사인 진달래와 철쭉은 봄을 더욱 화사하게 만들어 줍니다. 어릴적 먹었던 진달래 꽃과 철쭉은 그 생김새가 비슷한데 구분하는 방법도 안내해 드리고 진달대와 철쭉에 대한 아름다운 이야기와 문학들을 감상해 보시기 바랍니다.

 

먹을 수 있는 진달래(참꽃)와 먹을 수 없는 철쭉(개꽃)

 

1. 진달래와 철쭉 꽃의 특징 및 정보

(1) 학명 : Rhododendron mucronulatum Turcz 진달래 (3m) : 잎보다 꽃이 먼저 나온며, 꽃이 지고 잎이 나온다. 먹을 수 있다.

Rhododendron poukhanense Lev. 산철쭉(1~2m) : 잎과 꽃이 같이 나오며, 꽃 잎에 주림이 있고 검은 반점과 끈끈한 액이 있다. 독이 있어 먹으면 안 된다.

(2) 과명 : 진달래과

(3) 개화기 : 4~5월

(4) 별명 : 두견화, 산철쭉=연달래=개진달래, azalea

진달래(분홍) = 처녀

번달래(중간색) = 중년부인

막달래(보랏빛) = 할머니

사춘기 처녀 = 진달래(젖꼭지 색깔 - 선홍) 이규태

성숙한 처녀 = 난달래(젖꼭지 색깔 - 심홍)

(5) 꽃말 : 첫사랑, 사랑의 기쁨, 절제

(6) 특징 : 척박한 산성토양, 전국의 모든 산에서 자람 – 강한 생명력을 지님

 

진달래꽃
Pixabay로부터 입수된 ILBONG NAM님의 이미지 입니다.

 

2. 진달래와 관련된 문학

(1) 한국인의 얼

-이흥렬 [바위고개 2절] - 1933 저항곡

 

바위고개 핀 꽃 진달래꽃

우리 님이 즐겨 즐겨 꺾어주던 꽃

임은 가고 없어도 잘도 피었네

인은 가고 없어도 잘도 피었네

 

- 김소월 [진달래]

나보기가 역겨워 가실때에는

말없이 고이보내 드리우리다

영변 약산 진달래꽃

아름 따다 가실 길에 뿌리 오리다

가는 걸음걸음 놓인 그 꽃을

사쁜이 즈려 밟고 가시옵소서

나보기가 역겨워 가실 때에는

죽어도 아니 눈물 흘리오리다

 

- 나라꽃으로 추천(식물학회)

이북 국화는 목련, 김일성이 진달래 좋아했음(항일 빨치산 투쟁을 상징하는 꽃)

 

(2) 두견새와 진달래(사향회구)

- 소세양 [두견 - 양곡집]

망제의 넋이런가 밤마다 슬피 울어

저녁 해에 붉은 꽃은 온 산이 불붙는 듯 토해서

흐른 피에 꽃가지가 물이드네

시절은 봄바람 부는 이월이라네

 

-서정주[귀촉도] 촉나라 망제이름이 두우 - 두견새

눈물 아롱아롱

피리 불고 가신님의 밟으신 길은

진달래 꽃비 오는 서역 삼만리

흰 옷깃 여며여며 가옵신 님의

다시 오지 못하는 파촉 삼만리

신이나 삼아줄 걸 슬픈 사연의

올올이 아로새긴 짚신매투리

은장도 프른 날로 이냥 베어서

부질없는 이 머리털 역어 드릴걸

초롱에 불빛 지친 밤하늘

굽이굽이 은핫물 목이 젖은 새

차마 아니 솟는 가락 눈이 감겨서

재피에 취한 새가 귀촉도 운다

그대 하늘 끝 홀로 가신님아

 

(3) 강한 생명력(봄)

- 이은상[4월 혁명 기념탑]

해마다 4월이 오면 접동새 울음 속에

그들의 피 묻은 하소연이 들릴 것이오

4월 오면 봄을 선구하는 진달래처럼

민족의 꽃들은 사람들의 가슴마다 되살아 피어나리

 

- 이영도[진달래]

눈이 부시네, 저기 난만히 묏동마다

그날 쓰러져간 젊음 같은 꽃 사태

열렬히 꿈도 서러워라, 물이 드는 이 산하

 

 

3. 진달래와 관련된 설화(신화)

(1) 연달산의 참꽃과 개꽃

- 연달산 정상은 꽃으로 덮음

- 두 선녀가 죄를 지어 연달산에 귀양

- 나무꾼 아들이 정상을 천신만고 끝에 올라감

- 꽃 들판이 열려 있음, 가도 가도 꽃구름뿐, 선녀들의 노랫소리

- 선녀들을 숨어서 보다가 급습, 팔목을 잡음

- 인간과 두 선녀가 함께 꽃을 먹으며 살다.

- 나무꾼도 꽃처럼 미남이 되어가다. 두 선녀의 한 남자를 향한 사랑 경쟁

- 한 선녀가 싸우다 절벽에 떨어져 죽음 - 온산에 빨간 꽃이 피다.

- 남은 선녀는 나무꾼과 자녀를 낳았다.

- 그 선녀는 산에 꽃을 따먹다 죽으며 “내가 죽인 친구는 나에게 원수를 갚는구나, 온산에 피어있는 붉은 꽃은 선녀의 넋이니 먹으면 죽습니다. 장사 후 꽃나무 줄기를 잘라내시오. 늦게 피는 꽃은 먹지 마시오(개꽃). 일찍 피는 꽃은 먹어도 됩니다(참꽃).

- 먼저 피는 꽃은 진달래(참꽃) 나중에 피는 꽃은 철쭉(개꽃)

 

철쭉 이미지
Pixabay로부터 입수된 dae jeung kim님의 이미지 입니다.

 

(2) 나무꾼과 진달래

- 선녀가 진달래꽃을 심다가 벼랑에서 떨어져 다침

- 나무꾼이 집으로 업어가 간호

- 결혼, 딸을 낳음-달래

- 선녀는 하늘로 올라감, 이별

- 사또 부임, 달래를 요구, 거절, 효시

- 나무꾼도 달래의 시체를 안고 울다가 죽음

- 달래의 시체는 사라지고 나무꾼의 시체가 꽃눈이와 꽃무덤

- 해마다 꽃 무덤에 빨간 꽃이 피다.

- 나무꾼 성은 [진] 씨 딸[달래]→진달래

 

꽃말에 대해 더 알고 싶다면 아래 글을 확인하세요.

 

봄꽃 이야기  》

 

여름꽃 이야기  》

 

가을꽃 이야기  》

 

겨울꽃 이야기  》

 

 

야경[체코 프라하]


야경은

언제나 시원하다.

 

붉은 태양이 잠들어 버린

밤하늘은 열정 대신 차분함을 선사한다.

뜨거운 열기를 식히고 사색하는 시간....

여권의 영문 이름이 틀렸다고??? 정확한 영문 표기법


외국을 여행하다 보면

영문으로 뭔가를  표기를 해야 할 경우가 많이 있다.
그 가운데 당신은 이름은 필수다.

항상 여권 이름과 동일하게 기입해야 한다. 


그렇담 나는 올바른 영문 이름을 쓰고 있는가?

여러번 바뀌면서 혹시 틀릴 수도 있는 영문 이름

처음 여권을 신청하고 변경할 때 돈이 드니 처음부터 잘 만들어야 겠다.


그렇다면 어떡하면 되나?

로마 표기법을 찾아 떡하니 출력하려니...

왠지 잉크와 돈이 아깝다. 단어장도 아니고...

그렇다면 네이버에서 제공하는 변환기를 사용하면 쉽게 작업할 수 있다.

NAVER Lab언어변환기 한글 이름 로마자 표기

주소는 아래와 같다.
http://s.lab.naver.com/translation/?where=name


[시스티나 예배당] 드디어 노아의 홍수를 그리다.


나도 모르게 다리가 떨려왔다. '올려다 보는 것과 내려다 보는 것' 전혀 다른 모습이다. 항상 우리는 자신의 위치에서만 생각하게 된다. 하지만 다른 위치에서 다른 각도로 보게 되면 전혀 다른 세상을 만나게 된다. 


밑을 보고 있자니 현기증이 밀려 왔다. 제단으로 부터 검은 손길이 뻗어 오더니 발목을 감고 돌았다. 재물로 원하고 있는 듯 했다. 겨우 난간을 붙잡고 끌려 가지 않으려고 발버둥을 치고 있었다. 힘주어 눈을 감아 얼굴의 모든 근육들을 눈 꼬리에 집중 시켰다.


"이보게 조심하게! 바르나 다 시에나[각주:1] 꼴이 되기 싫으면 말일세"

그 소리에 검은 손길을 사라지면서 순간 정신이 들었다. 


한바탕 놀리는 야유들이 쏟아지고 작업은 다시 시작되었다.

모두들 고개를 젖히고 작업을 하기 시작했다.

그 모습을 보는 순간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옆에 있던 미켈란젤로는 미소의 의미가 무엇인지 어깨로 물어왔다. 

"완전히 거짓말이었다고."
"뭐가 말인가?"

"비계에 등을 대고 누운 자세로 프레스코를 했다는 말이요."


미간을 찌푸리면서 "누워서 작업을 한다고?"

"네! 서서 한다는 것은 너무 고된 노동이라 누워서 했다고 했죠!"

"얼간이들이군. 누워서 한다고? 프레스코를? 프레스코가 뭔지도 모르는 얼간이군!!! Stare Fresco!!!"[각주:2]


"그런데 누가?"

"사람들이요"

알듯 모를듯 고개를 흔들면서 작업은 계속되었다. 한참 후 다시 내 말이 생각났던지...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누워서라~ 음 좋은 생각이군."

나 또한 누워서 작업 했을 거라 생각했다. 이 넓은 천정을 다 그릴려면 오랜 시간이 소모되었을 것이다. 집에서 하루 도배만 해도 뒤목이 뻣뻣해 오는 것을 다들 경험해 봤을 것이다. 뭐 직업상 아무리 달련 되었다고 하더라도 몇 달을 아니 몇 년을 그렇게 한다는 것은 불가능해 보였기 때문이다. 하지만 누워서 하려면 프레스코 기법을 다시 고안해야 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프레스코는 기존의 마른 석고 위에 인토나코라고 하는 새로운 석고를 흙 칼로 반 인치 두께로 덧칠을 한다. 인토나코는 석회석과 모래로 된 부드러운 반죽으로 표면은 안료의 침투가 가능한데, 표면이 건조되는 과정에서 방수 기능을 갖게 되면서 흡착된 안료가 콘크리트 바깥으로 새어나는 것을 방지한다. 인토나코는 바르고 한 두 시간이 지나면 외피가 형성 되면서 그림을 그릴 수 있게되는데, 외피가 형성 되기 전에 사전에 그려진 밑 그림을 작은 못으로 고정을 시켜 놓는다. 밑 그림은 소묘 선을 따라 무수히 많은 구멍이 뚫려 있고, 그 안으로 목탄 가루를 뿌리거나 색 가루 주머니를 '탁탁' 치면서 대략적인 선을 남기고 붓으로 윤곽을 그려 나간다. 이 기법을 스폴베로(Spolvero)라고 한다. 다른 방법은 초크 선을 따라 철필로 그어서 석고에 자국을 남기는 방법이다. 보다 신속하게 윤곽을 남길 수 있는 방법이다. 


"하지만 당신도 '프레스코'를 제대로 해 본적이... 제가 알기론 당신도 처음이라고"

"그렇지! 맞아! 나도 프레스코에 얼간이지..." 


붓을 내려 놓더니 손을 내 앞으로 뻗으면서 말을 했다.

"이 손을 보게나. 붓을 잡을 만한 손은 분명 아니지... 고된 작업으로 인해 군살들이 박혔다네... 하지만 이 손은 한번도 날 속인적이 없다네. 하나님은 그 손으로 뭐든지 할 수 있는 능력을 부여 했다네. 정직하기만 하면 무슨 일이든 하나님은 축복하실 걸쎄..."

"하지만 아무리 정직해도 세상은 항상 성공할 수 만을 보장하지는 않아요." 

"왜? 나에게 이런 일이 벌어졌는가에 대해 후회하나 보군?"

"그게 성공과 무슨 상관이 있죠?"
"후회가 없다면 성공이든 실패이든 무슨 상관이 있나. 후회는 두려움을 가져오고 아무것도 하지 못하게 만들지."

"그럼 이 일을 맡게 된 것에 후회하신적이 없으세요? 참으로 고되고 처음 하는 일인데요."

"후회라... 돌을 다루는 일을 사람들은 천시여기지. 가끔 내가 생각해도 그래. 대리석 먼지를 쏜 꼴이란... 그래 제빵공처럼 하루가 끝나면 내 모습을 찾아 볼 수 없지. 도무지 지저분하고 시끄럽기만 한 그곳을 우아한 화가들의 집과는 전혀 차원이 다르지... 하지만 후회한 적은 없네. 이 번일은 그런 작업 환경에서 벗어났지만 역시나 후회는 없네. 오히려 가능성을 실험할 기회니까."


브라만테가 교황에게 보낸 편지를 읽은 기억이 있었다.

'미켈란젤로 선생은 이 일을 해낼 만한 충분한 용기나 배포가 없습니다. 그는 아직 인물화 경험이 충분치 않습니다. 더구나 천장에 그리는 인물화는 그에 필요한 원근법을 알아야 합니다. 그건 땅에 발을 디디고 그리는 것과 차원이 전혀 다릅니다.'


이 사실을 알려 주고 싶었다.

"미켈란젤로씨 당신은 모르겠지만 브라만테의 함정에 빠졌어요."

그는 웃음으로 대답했다. 그 미소에는 뭔가 힘이 실려 있었다. 


"브라만테는 당신의 재능을 시기해서 시스티나 예배당을 제안한 거에요. 거부하면 교황의 분노를 사게 될 것이고, 반대로 당신이 승낙하면 경험 부족으로 실패할 것을 예상하고 말이에요."

"알고 있네. 브라만테... 그 이름 만큼이나 욕망에 '굶주린' 사람이지. 그의 장난이란 것을 이미 알고 있네..."


"전문분야도 아니고 이 넓은 공간을 어떻게 실수하지 않고 다 채울 수 있죠? 실험이라고 하기엔 너무 큰 명예가 달린 것 아닌가요?"


"하하하 걱정 말게... 내게도 다 생각이 있다네. 먼저는 음... 작품이 완성할 때 까지 아무도 작품을 볼 수 없다네. 이 발판이 안전한 보호막이 되어 아래에서의 시선을 가려줄 거네. 그 말은 즉 실수해도 괜찮다는 말이지. 잘못 되었으면 수정하고 고치면 된다네... 물론 고생이 따르겠지만 말이네. 하지만 어쩌겠나. 나도 한번에 해낼 꺼라고 생각하지는 않네. 게다가 지적했듯이 난 프레스코를 모른다네. 하지만 이 작업을 위해 그 동안 많은 준비를 했네. 어디서 부터 어떤 작업을 할 껀지 다 구상해 두웠다네. 이미 내 머릿속에 시스티나의 천정이 다 그려져 있네. 그것을 당장 보여 주고 싶지만 젊은이 좀 참아 주게. 아 그리고 성실하고 정직한 이 손을 믿을 뿐이라네."


"잠깐 따라오게... 여기 좀 읽어 주겠나?"

성경책에 하얀 가루가 묻었다. 펼친 곳은 창세기 6장이었다.

"너는 고페를 나무로 너를 위하여 방주를 만들되 그 안에 칸들을 막고 역청을 그 안팎에 칠하라. 네가 만들 방주는 이러하니 그 길이는 삼백규빗, 너비는 오십 규빗, 높이는 삼십 규빗이라. 거기에 창을 내되 위에서부터 한 규빗에 내고 그 문은 옆으로 내고 상 중 하 삼층으로 할지니라.(창세기 6:14~16)" 라틴어 성경이 술술 읽히는 것이 신기하기만 했다.

"라틴어 공부했군. 아주 잘했네. 지롤라모 사보나롤라를 혹시 아는가?"

"글쎄요. 저는 잘..."

"이 길로 들어 서면서 라틴어를 공부해야 겠다고 마음 먹었지. 소경이 어떻게 소경을 인도하겠는가? 그래서 독학하기 시작했지[각주:3]. 다른 언어를 할 줄 안다는 것은 또 다른 인생을 사는 것이지.  아마 15살 때 쯤 열정적인 그의 설교를 들었지. 그처럼 영혼을 울리는 메시지는 없었다네. 그건 그렇고... 삼백규빗이면 얼마인지 아는가? 135m이네, 폭이 22.5m 그리고 높이 13.5m가 되는 어마 어마한 크기이지. 가족의 힘만으로 그것을 만든다는 것이 가능할까? 불가능할까"

"글쎄요... 불가능해 보이는데요."

"여기 좀 다시 읽어 주겠는가?"

"노아가 그와 같이 하여 하나님이 자기에게 명하신 대로 다 준행하였더라." (창세기 6:22)

"난 지금까지 그 믿음대로 살아왔네. 감당할 수 있는 일을 하나님은 부르시고 맡기시지. 나 또한 하나님이 주신 영감대로 그려 나갈 뿐일쎄.... 그리고 이 그림은 성경을 읽을 수 없는 가난한 자들을 위한 조그마한 봉사일 뿐. 그 이상도 그 이하도 아니지."


그림을 완성하는데 오랜 시간이 걸렸다. 19개의 조르나타가 들어 갔다. 여러번의 수정 작업은 당연한 일이었다. 하지만 아무도 몰랐다. 그가 수정을 하는지 그림을 그리는지는 밑에서 볼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 


[각주:4] 


처음 그가 그린 것은 노아의 방주였다. 만선인 작은 배에 필사적으로 승선하려는 벌거숭이 남자들과 수십 명의 성인 남녀와 어린아이들이 나체로 대홍수를 피하고 있었다. 직사각형 방주는 지붕과 창문이 보이고 지붕에는 비둘기가 창문 사이로는 빨간색 옷을 입고 구레나룻 수염을 늘어뜨린 노아가 보였다. 하지만 노아는 시선은 주변의 어려움을 외면한체 먼 곳을 바라보고 있다. 그 모습에서 미켈란젤로의 모습 또한 보았다. 그 또한 항상 고독했으니까. 


어렵게 방주에 도달했지만 여전히 구원하고는 거리가 멀었다. 방주 안으로 들어 갈 방법이 없었다. 사다리를 세워보고 심지어 도끼로 찍어 보지만 방주 안으로는 들어 갈 수 없었다.


작은 배는 위태하다. 살기 위해 배를 차지하려는 인간의 폭력과 욕망을 잘 보여준다. 자신이 살기 위해서는 다른 누군가를 밀치고 끌어 내려야만 한다. 하지만 배에 올라 선 자라고 해서 평안하지는 않다. 여전히 두려움과 불안이 엄습하고 있다.  그들의 표정에는 불안, 두려움, 난폭이 녹아있다. 


왼쪽 고지대로 질서정연하게 오르는 사람들의 모습은 실의에 빠진 모습이다.

벌거벗은 채로 한 웅큼의 옷가지를 그리고 프라이팬을 움켜진 두 남자를 보인다.

뒤를 이어 걸상을 거꾸로 세워 식빵과 도자기 몇 점과 칼을 담아 머리 위로 올린 여성이 따르고 있다.

차오르는 물을 피하기 위해 더 높은 곳으로 가기 위한 헛된 노력들이 애처롭기만 하다.


오른쪽에는 돌섬 같은 곳에 임시로 천막을 쳐서 비를 막아 보지만

멈주치 않고 계속 불어나는 물의 높이를 확인하며 절망에 빠진다.

그럼에도 기운찬 노인이 무기력하게 출 늘어진 젊은이를 두 팔로 붙잡고 돌섬으로 옮기고 있다.

같은 운명에 처할 상황에서도 손을 뻗는 인간애도 보인다.



죽음을 앞두고 보일 수 있는 인간의 모든 모습을 고스란히 천장에 담았다. 하지만 비가 보이지 않았다.


"미켈란젤로! 언제쯤이죠? 비가 내리기 전인가요? 비가 멈추 후인가요? 아니면 내리는 순간인가요? 그런데 왜 바람은 보이지만. 세찬 빗방울은 보이지 않죠?"


  1. 14세기 화가로 산 기미냐노 성당 부설 콜레자타에서 [예수의 일생]을 프레스코 하다 30미터 아래로 추락하여 목숨을 잃음. [본문으로]
  2. '스타레 프레스코'(starefresco)는 이탈리어 표현으로 '곤경에 빠지다'라는 뜻이 담겨있다. 영어 프레쉬(fresh)의 이탈리아어 프레스코(fresco)는 축축하게 젖어 있는 석고 위에 그림을 그리는 것으로 프레스코 작업은 온갖 어려움과 고초가 있음을 암시한다. [본문으로]
  3. 13세에 도메니코 길를란다요 화실에 들어 감 14세에 산 마르코 정원 학교에서 신학, 수학을 배움. 로렌초 사망 후 자신을 받아 준 알도브란디에게 매일 저녁 보카치오, 단테, 페트라르카 등의 책을 읽어 줌. 16세에 4권으로 된 [일리아드]를 라틴어로 완역을 함. [본문으로]
  4. http://blog.naver.com/PostView.nhn?blogId=jyson33&logNo=100152041081&categoryNo=39&parentCategoryNo=0&viewDate=¤tPage=1&postListTopCurrentPage=1&userTopListOpen=true&userTopListCount=15&userTopListManageOpen=false&userTopListCurrentPage=1 참조 [본문으로]

[시스티나 예배당] 혼동 - 여행의 시작


로셀리는 인사하면서 나갔다.

"먼 거리에 피곤할 텐데... 잠시 이 집에서 머물고 있으세요. 친구들을 풀었으니 금방 집은 구할 꺼에요. 그리고 내일부터 일을 도와 주면 되요."

"로셀리 아까 말은 이해가 되질 않아요?"

"그래요 저도 이해가 되지 않아요. 하지만 미켈란젤로씨라면 분명 생각이 있어서 그렇게 하셨을 꺼에요. 그럼 잘 자요"


문을 닫으면서 

'로셀리는 우리가 묵었던 호텔을 어떻게 알고 있었을까? 아니 그 잠깐 사이에 모든 것이 바뀌었다. 바뀐 것이 아니라 없어졌다고 해야 맞을 것 같다. 지하철, 트램, 현대식 건물들... 하다 못해 핸드폰을 들고 가는 사람을 한 명도 마주치지 못했다. 사람들이 다 바뀌었다. 축제장에 온 것 같은 옷 차림들...' 

순간 지나치던 사람들의 시선이 뇌리를 스치고 지나갔다.

'도대체 무슨 일이 벌어진 거지.'


밖의 풍경을 내다 보면서 아내는 물어왔다.

"아까 로셀리가 했던말 생각나요?"

"무슨말?"

"그 분이 미켈란젤로라고 했잖아요. '다비드'상을 만든..."

"정신 빠진... 아니 말은 맞지... 그러니까 다비드 상은 미켈란젤로의 작품이지... 하지만 말도 안되는 소리로 사람 혼을 빼놓고서는... 그래 가방! 잃어 버린 물건 없나 찾아봐!!! 아까 봤지 카운터에서 주인장이랑 웃으면서 말하던 것... 어떻게 우리 묵은 호텔을 알고 안내했지? 이렇게 한 방 먹은 건가?"

"글쎄... 좋은 사람 같던데..."

"당신은 그래서 문제야. 미켈란젤로라는 무슨... 건축회사 감독관이나 되나 보지. 아무튼 한번 지갑이랑 살펴보라니까! 여권 지갑 신용카드..."

지퍼를 열던 아내는 시무룩한 표정으로...

"모든 것은 그대로 있어요. 다만 요엘이의 분유가 터져버린 것을 빼면요."

"맞아 관광 가이드 책을 좀 줘봐. 로셀리 이 사람 우리를 얼간이로 알아겠다."


책을 펼쳐들고 87페이를 펴는 순간 현기증이 생겼다.


시스티나 예배당의 원래 작품은 31세의 피에트로 페루지노, 산드로 보티첼리와 미켈란젤로의 스승인 도메니코 기를란디요(33세)가 참여해서 완성했다. 후에 루카 시뇨렐리도 합류해서 프레스코 작업을 도왔다.  벽 전체를 유리창 아래 격식과 일치하도록 6개 구역으로 나누고 한 구역에 한  명의 화가와 조수들을 배정해서 폭 6m, 높이 3.6m 크기의 그림을 완성했다. 본당 한 쪽은 모세 일대기 장면과 맞은 편은 예수의 일대기를 그렸다. 밝은 색 옷 차림을 입은 역대 교황 32명의 초상화를 그리고 천장은 큐폴라 양식에는 흔한 별들이 반짝이는 하늘을 주제로 그렸다. 천장을 작업한 사람은 피에르마 테오 다멜리아이다.


"피에르마 테오 마멜리아... 아까 편지를 보냈다는 사람?"


계속 읽어 내려 갔다.


1508년 5월 10일 미켈란젤로는 작업을 하기로 계약을 했고, 1512년 10월 31일 완성했다. 4년 4주 만에 완성한 시스티나 예배당 천장은 지금도 많은 사람들의 발걸음을 이끄는 걸작으로...


읽는 것을 멈췄다. '도대체 무슨 일이지?'


"여보, 저 사람들 봐요. 지금 무슨 행사를 하나 봐요. 모두들 중세 시대 옷들을 입고 나왔어요. 작년 여행에서도 그랬잖아요. 체코에서 체스키크롬로프를 갔을 때 기억나요? 그때도 아마 6월 이었죠?"

"그런가? 나도 그랬으면 좋겠어."


로셀리는 열심히 제거 작업에 열중하고 있었다. 아래에서 그들의 작업을 열심히 바라보는 어제 보았던 사나이가 있었다. 어깨가 딱 벌어진 단단한 체격이었지만 몸매가 좀 이상했다. 네모진 이마에는 주름이 많고, 검은 머리는 헝클어진 고수머리였다. 조그마한 눈은 슬프게 보였다. 턱수염은 그 외로움을 감추는 듯 했다. 걸을 때 등은 굽고 배가 나왔다. 그리고 보니 가이드 책에 나온 얼굴과 비슷했다.


마르첼로 베누스티의 <시스티나 예배당 천장화를 그릴 무렵의 미켈란젤로의 초상>, 1535년경


나도 모르게 그의 이름이 새어 나왔다.

"미켈란젤로 부오나로티 (Michelangelodi Lodovico Buonarroti Simoni); 1475년 3월 6일 ~ 1564년 2월 18일"

[시스티나 예배당] 만남! 미켈란 젤로를 만나다.

사람들의 긴 행렬에 합류하여 계단을 내려 가고 또 내려갔다.  탄성과 웅성 거리는 소리가 문을 통해 새어 나오고 있었다. 오랜 기다림의 결과가 바로 눈 앞에 펼쳐질 시간이었다. 문을 통과 하기도 전에 우리의 고개는 뒤로 젖혀 졌다. 미켈란젤로가 몇 년 동안 했을 몸 짓을 나도 모르게 따라 하고 있었다.


문을 들어 선 순간


시끄러운 작업 소리가 천장에서 울리고 있었다. 석고들의 파편이 어지럽게 쌓여 있었다. 오래된 먼지들과 석고 가루들은 예배당을 가득 채우고도 모질랐는지 이방인의 호흡 기관에도 가득 채워갔다. 민감해진 기관은 도저히 버티지 못하고 연신 재채기를 했다.


"쿨럭, 쿨럭!!!"


재채기 소리에 위를 뚫어져라 바라 보던 한 사나이가 뒤로 돌아 보았다.

머리에 먼지가 가득 쓴 꼴이 제빵공처럼 보였다.

한참을 쏘아 보더니... 다무진 입술을 열었다.


"자넨가?"

한심스런 표정으로 계속 말을 이어갔다.

"얼마전에 편지는 받았네만... 너무 말랐군! 이런 애숭이를 추천하다니...."


"어이. 로셀리! 이리 좀 내려오게... 이 친구 집 좀 구해 줘야 겠네."

"지금이요? 지금 일이 태산처럼 쌓인 것이 안 보이나요?"

"나도 알고 있네... 하지만 자네 만큼이나 잘 하는 친구도 없지. 허허."


로셀리는 천장의 별 하나를 막 떨어뜨리던 참이였다.

마르텔로를 내려 놓고 한참 후에 내려왔다.


작업 모자를 벗어 온 몸에 붙은 석회 가루를 털고는 정중하게 악수를 청했다.


"사람들은 저를 로셀리라고 부르죠..."

"전 피터에요."

"음 좋은 이름이군요. 내기 하나 할까요?"

"......"

"당신 집을 구하는 일과 저 천장 작업 중에 어떤 것이 빨리 끝날지 내기해요?"

"집이라뇨? 우린 그냥 시스티나 예배당의 천장화를 보려고 온 것 뿐이에요?"


"피터... 알고 있네. 천장화를 보러 왔겠지." 계속해서 그는 말을 이어 갔다.

"피에르마 테오 다멜리아로 부터 편지를 받았네... 편지를 통해 천장화에 대한 강한 애착을 엿볼 수 있었지. 암 그렇고 말고. 그런 마음이 없다면 애시당초 붓을 들어서는 안되지. 그리고 자신의 그림 위에 어떤 그림이 덧칠해 질지 무척 궁금해 하더군. 그래서 한 사람을 보낸다고 했지. 자 보게나. 별들이 떨어지고 있네."

"도무지 무슨 말인지 모르겠어요. 지금 여기는 어디고? 또 그 해괴한 옷차림, 그 말투는 좀 처럼 적응이 안되는 군요. 시스티나 예배당이 아닌가요?"

"허허. 좀 충격이 큰가 보군. 나도 잘 알고 있네. 그가 반짝이는 별들을 수 놓기 위해 밝고 푸른 바탕색에 황금별을 새겨 넣었다는 것[각주:1]을... 더욱이 가장 밝고 비싼 금색과 군청색을 풍부하게 사용 했더군. 하지만 나는 별에 별로 관심이 없다네... 미안하지만 기존 프레스코는 흔적 하나도 남기지 않고 모두 뜯어 낼 계획이네... 비록 일은 더디게 진행되더라도 말일쎄."


그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로셀리 말을 이어갔다.

"덧 없는 인생이여~ 우리의 발자국도 결국 다른 사람들의 차지가 되겠지요?"

"도대체 당신은 누구죠?"

"저요? 전 아까 로셀리라고..."
"당신 말고... 당신 말이에요. 도대체 누구죠? 그리고 여긴 어디죠?"


그때 아내가 조용히 내 옷자락을 잡아 당기면 멍한 표정으로 핸드폰을 가르켰다.

핸드폰의 날짜는 크고 선명하게 1508년 6월 13일 오후 2시를 가르키고 있었다.


"혹시 지금 날짜가?"

"네 기억으로는 한 달 하고도 3일 전에 이 일을 위한 계약서에 서명을 했으니까. 그러니까 오늘은..."

옆에서 로셀리가 말했다.

"미켈란젤로씨 7월 말까지 철수하기엔 너무 벅찬 일이 아닌가요?"

"그래도 자네가 서둘러 줘야 겨울이 오기 전에 시작이라도 해 볼 수 있지 않을까?"

"아무튼 미안 하네 피터. 충격이 크겠지만 스승에게는 그대로 보고해야 할 의무가 있겠지? 그리고 우리 일을 도와 주는 조건으로 자네의 합류를 허락했네. 자~ 로셀리! 빨리 아이와 숙녀 분에게 좋은 집을 구해 줘야 겠지?"

"분부대로 해야죠." 로셀리는 어깨 위에 먼지도 마져 털었다.


등뒤로 그의 목소리가 울렸다.

"아 별은 걱정 말게나... 아이 방에 지금 사라져가는 별들을 그대로 옮겨 줄 것을 이름을 걸고 약속 함쎄... 내 이름은 미켈란젤로일쎄."


로셀리는 금세 옆으로 다가와 속삭였다.

"하~ 내 발명품 도르레를 이렇게 아기 바구니에 달았군요. 멋진걸요!"


유모차를 자기 품으로 잡아 당기면서 앞장을 섰다.

멍하니 서 있는 우리를 향해 고개짓으로 따라 오라고 했다.

  1. 큐폴라(cupola)는 작은 건물의 돔과 같은 양식의 둥근 천장을 뜻한다. 왕관을 씌운 듯한 큰 지붕이나 돔 모양의 큐폴라는 실내에서의 전망을 좋게 하기 위해서, 또는 햇볓이 잘들고 공기의 순환을 좋게 하기 위해서 사용된다. 그 단어는 작은 컵(라틴어 큐파)를 엎어 놓은 모양의 둥근 천장을 나타내는 저 라틴어 큐풀라(그리스어 큐펠리온에서 유래한 고전 라틴어 큐펠라)로 부터, 이탈리아어를 경유해서 들어온 단어이다. 큐폴라는 큰 건물의 부속된 작은 건물들에서 자주 나타난다. 그 건축물은 큰 지붕보다 더 높이 있어 자주 종탑, 등실, 또는 전망대의 역할을 한다. 달리 말하면 그 건축물은 탑, 첨탑, 터릿[3]이라고도 할 수도 있다. 인도 건축에서 볼수 있는 챠트리가 큰 구조의 꼭대기에 사용됐다면 큐폴라로 정의한다. 큐폴라는 고대 로마 건축에서 발견된 장치인 오큘러스가 발전한 것이다. 그러나 비바람에도 견딜수 있는 큐폴라는 북유럽의 습윤한 기후에서 우세했고 르네상스 시대에 영향력이 컸다. 참조[http://ko.wikipedia.org/wiki/%ED%81%90%ED%8F%B4%EB%9D%BC] 큐폴라 양식에는 흔한 그림 주제였다. [본문으로]

[시스티나 예배당] 지루한 줄서기

다가가는 순간 눈이 휘둥그레 커졌다. 


'설마, 저 많은 사람들이!!!'


수많은 사람들이 "이곳이 바로 그 '장소'입니다."라고 외치는 것 같았다. 더 이상 지도도, 직감도 필요하지 않았다. 수 많은 깃발들은 마치 고지 점령을 이끄는 기수들 같았다. 물론 깃발들은 인파로 인해 천천히 그리고 조금씩 전진할 뿐이었다. 그런데 전혀 다른 길로 한 일행을 이끄는 깃발을 보았다. 순간 우리는 그 깃발에 매료되어 그 일행 꽁무니를 따라 붙었다. 이미 지친 사람들을 뒤로 하면서 전진할 수 있었다. '모세의 기적'을 경험하는 순간이었다. 아무런 저지도 없이 입구쪽으로 돌진 할 수 있었다. 


드디어

깃발을 든 기수병은

길을 가로 막고 서 있는 병사에게 거침없이 다가섰다. 

그리고 왕의 명령서를 꺼내 들었다. 저건 뭐지???


온라인으로 단체 예약[각주:1]을 한 것이었다. 당연히 소속 불명의 우리 가족 이름은 있을리가 없었다.


좀 더 정보를 알았다면 그래서 온라인 예약을 알았다면 이런 짓은 하지 않아도 될 텐데.

아니 조금만 부지런히 움직였다면 여유를 가지고 줄을 서지 않았을까?


이미 눈으로 그 길이를 확인한 우리로써는 되돌아 가기가 엄두가 나지 않았다.

순간 유모차를 무기로 들이 밀기로 결정했다. 너무나도 부끄러운 순간이었다. 


"실례합니다."

이 말만을 외치면 앞으로 나아갔다.

가슴이 떠질 것 같은 우리 가족들의 만행을 여유로운 사람들이 기꺼이 눈 감아 주었다. 

그것은 우리의 행동을 묵인했다기 보다는 아들의 위한 배려였다.


시스티나 예배당은 1475년 교황 식스투스 4세(1471-1484)가 주문해서, 바치오 폰텔리가 설계를 했고 조반니 데 돌치가 건축했다. 

1483년 8월 15일에 완성(실제 공사의 끝은 1481년으로 본다)을 했다. 


예배당은 길이가 40.23미터, 폭은 13.40미터, 그리고 높이는 20.70미터로 예루살렘을 침공했을 때 파괴한 '솔로몬의 성전'의 세로 높이 2배 가로 3배의 크기로 만들었다. 


당시에는 신앙의 형태였지만 지금도 여전히 많은 사람이 몰리고 있다.


왜냐하면 거장들의 작품들이 있기 때문이다.

'보티첼리', '기를란디오', '코시모 로쎌리', '씨뇨렐리', '라파엘로', '페루지노', '핀투리끼오', 그리고 '미켈란젤로' 등등 당대의 유명한 사람들은 자신의 기량을 그곳에서 뽐냈으리라. 


사실 완공 당시 '미켈란젤로'의 그림은 없었다. 


21년이 지난 후 1504년 지반침하로 남쪽 벽이 바깥으로 기울면서 천장이 갈라지고 말았다. 

줄리아노 다 상갈로는 지반 이동을 억누르고 천장 벽돌과 마룻 바닥에 수십 개의 쇠막대기를 박아 넣어 더 이상의 균열을 막았다.

1504년 가을 다시 개방했지만 균열로 벽돌을 채우고 석고를 바른 탓에 천장화의 일부(북서쪽)가 비뚤 거리는 흰선을 그대로 들어 내고 있었다.


아무도 예측하지 않았던 사건을 계기로

걸작의 탄생이 시작되었다.

  1. 온라인 정보(http://mv.vatican.va) 온라인 예약(http://biglietteriamusei.vatican.va/musei/tickets/do?weblang=it&do) 온라인으로 예약하고 프린터해서 가면 줄을 서지 않고 입장이 가능하다. [본문으로]

[시스티나 예배당] 발걸음 - Cappella Sistina를 향해

"이런"


어제 알람을 맞춰 놓았지만... 그 동안의 여정이 힘들었던지 알람 소리를 듣지 못했다. 호텔 아침 시간도 끝날 무렵에서야 겨우 일어났다. 이미 바닥에 흘러 내린 이불을 들어 올리면서 침대 난간에 걸터 앉았다. 게으름에 대한 댓가는 어김없이 후회로 밀려왔다.


'어제 그 일정을 소화했어야 했는데... 아니 아니, 좀 더 비용이 들더라도 바티칸에 숙소를 잡았어야 했는데' 


옆에는 영원한 여행의 동반자 아내와 아들이 곤히 자고 있다. 어지럽게 벗어 놓은 흰 색 운동화는 그 빛깔을 잃어 버린지 오래다. 가방은 그대로 유모차에 걸린체 밤새 힘들게 있었다. 동전과 지갑 그리고 물병이 어지럽게 테이블에 흩어져 있었다.


 '그래도 깨워야 겠지? 이 여행도 끝이 있기 마련이니까?'


이곳에 온 이유는 단순했다. 때로는 단순함이 일들을 가능하게 한다. 너무나 단순, 명료하기 때문에 다른 것들을 생각할 시간 조차도 없이 실행으로 옮길 수 있다. 미켈란젤로의 '천지창조'는 힘든 상황 가운데 있던 우리 가족을 이끌었다. 거장의 작품을 통해 뭔가 얻고자 했던 기대가 있었던 것이다. 새로운 다짐, 새로운 출발.


[각주:1]


늦었지만 서둘렀다. 하지만 마음뿐 아무도, 아무것도 따라 주지 않는다. 지하철 역에서 들어 서면서 어제 이미 여러번 책과 지도로 답사를 했지만 머리가 백지장이다. 가방에서 허둥 지둥 지도를 펴들고, 익숙하지 않는 길들을 따라 걸어가기 시작했다. 고개를 들어다 놨다 표지판과 지도를 연신 반복한다. 스마트폰이 있었다면 네이게이션 기능을 사용하면 편했을 텐데... 그 좋은 문명의 기계들을 뒤로 하고 이 무슨 지도람. 연신 이렇게 서둘러야 했던 이유들이 떠올랐다. 그런 생각이 들자 다시 화가 치밀었다.


사실 숙소를 나오기 전부터 화가 난 있던 상태였다. 혼자서 여행을 준비했다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모든 여행 계획, 비행기 표를 구하고 숙소를 예약하고 지도를 숙지해야 하고 방문하는 곳에 대한 지식도 알고 있어야 했다. 그것들을 준비 하려면 고단한 일정에서도 긴장감을 늦출 수 없었다. 더군다나 이미 예약한 숙소에 대한 불만이 터지기라도 하면 미안함 보다는 혼자 그 모든 것을 감당해야 함에 대한 분노가 치솟았다.

'왜 이런 생 고생을 하지? 자기가 준비하지?'


"더 꾸물거리지 말고 일어 나야지?"

"벌써 시간이 이렇게 됐어?"

"당신은 뭐하는 거야! 지금까지 자면 어떡해!"

"내가 일부러 그랬나? 피곤하니까 그렇지."

"아 그만해... 서둘러 시간 없어."
"밥은...?"

"밥은 무슨? 시간 없어..."

"얘는"

"당신이 가서 빵 싸오든지..."

"......"


유모차를 들어 줘야 할 때를 제외하고는 아내는 뒤에 처져서 따라 오고 있었다. 그 적막한 상황을 무마한 것은 역시나 아들 요엘이었다. 비둘기를 만날 수 있다는 기대감에 요엘은 빵을 그대로 들고 있었다.


  1. http://www.joysf.com/files/attach/images/2044932/486/202/004/world.jpg 참조 [본문으로]

길거리 예술인을 만나다 [유럽: 이탈리아 로마]

이탈리아(로마)를 여행 중 너무 배가 고파서 햄버거 가게로 향했다.

'Mac'은 일단 검증되었기에 간식으로는 충분했다. 

가게 앞에는 열심히 그림을 그리는 사람이 있었다.
어찌나 빨리 그림을 그리는지 아니 찍어 낸다고 표현하는 것이 맞을 것이다.

락카로 대충 뿌려댔다. 

락카의 기분 나쁜 냄새가 바람을 따라 날아왔다. 

안개처럼 연기들이 사라지면 3D처럼 그럼이 튀어 나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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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의 열정적인 모습은 매력적이었다. 
자연의 모든 만몰들을 보라. 
누가 감독 하거나 감시 하지 않더라도 열심히 생명을 이어간다. 
참으로 경이로운 광경이다. 사람도 마찬가지다. 

누구나 자신의 일에 열정과 자부심으로 땀을 흘린다면, 
그 안에 혼이 깃들였고 그것에 갈채를 보내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